[심승규의 모두를 위한 경제] 기본소득, 누구를 위한 걸까

입력 2021-03-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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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오야마학원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기본소득제도와 관련하여 여권 내부에서조차 격렬한 설전이 오간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전 국민에게 월 50만 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제안했고,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러기 위해서 약 317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며 이 지사를 비판했다. 이렇듯 정치인들의 기본소득에 관한 논쟁은 많은 경우 그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소득불평등 해소가 정책목표라면 재원 마련은 제약조건일 뿐이다. 소득 불평등 해소라는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하나의 정책수단으로 논의되는 기본소득제도가 과연 합목적적일까?

논의의 편의를 위해 전 국민에게 ‘선별지급’이 아닌 ‘보편지급’된 1차 재난지원금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갑작스런 팬데믹에 직면하여 세계경제는 급속하게 얼어붙었고, 각국 정부는 가계소득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보편적 지원금을 지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선별지급이냐 보편지급이냐를 두고 여야 간 공방이 있었지만, 결국 정부가 나서서 고소득 계층은 자발적으로 기부해 달라고 읍소하면서까지 국민건강보험 가입자 전원을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였다. 물론소득계층별 한계소비성향 등을 고려하여 저소득층에 집중되었더라면 더 큰 효과를 볼 수도 있었으리란 반사실적 예측도 가능하지만, 긴박했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다면 적절한 타이밍에 경제순환의 불씨를 되살리고 경제의 V자 반등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정책목표에 부합되는 합목적적인 선택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이렇게 전 국민에게 지급된 돈은 돌고 돌아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었고, 기업실적의 뒷받침 없이 주가만 급격히 상승하는 유동성 장세를 연출했다. 팬데믹 초기부터 주식에 투자했던 개인투자자들 중 일부는 수백, 수천 퍼센트 수익을 얻었고, 그들의 성공에 고무된 후발주자들이 지속적으로 신규 진입함으로써 유동성 장세는 더욱 강화되는 모양새다. 지나친 소비위축을 우려해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이 최종적으로 자산시장이라는 저수지에 흘러들어 자산시장 참가자들만의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도 낳았다. 전 국민에게 균등 배분되었던 긴급재난지원금이 누군가에게는 생계유지를 위한 ‘끼니’가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투자를 위한 ‘총알’이 되었다.

이제 다시 시선을 기본소득으로 돌려 보자. 긴급재난지원금과 기본소득은 얼핏 비슷해 보일지라도 긴급성 여부뿐 아니라 정책목표라는 측면에서도 크게 다르다. 즉, 긴급재난지원금은 실물경기 경색 완화를 목표로 하고, 기본소득은 소득불평등 해소를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그런데 앞선 긴급재난지원금의 경험에서 배웠듯, 이미 존재하는 소득격차의 발생 및 확장 경로를 무시하고 일정액을 균등분배하는 것은 주식시장 참가 여부,자산 보유 여부 등과 맞물려 소득격차를 더더욱 확대할 뿐이다.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저소득층에는 ‘최저생계비’가 되지만, 고소득층에는 ‘최저투자금’이 되기 때문이다. 하물며 긴급하지도 않은 기본소득이 매달 지급된다면 소득격차는 더더욱 확대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이 소득불평등 해소라는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정책수단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요즘은 주류경제학에서도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한 많은 연구들이 축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래 인간의 노동력이 로봇으로 대체되는 상황에서 복지재원으로서 로봇세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실제 그러한 연구는 기본소득 진영에서도 종종 인용한다. 그러나 로봇세에 대한 연구도 로봇으로 대체되는 노동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으로 전제할 뿐, 로봇세 수입을 전 국민에게 균등배분하라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또한 세계 여러 선진국들이 보편적인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였지만, (알래스카를 제외하면) 보편적인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나라는 없다고 한다. 이를 단순히 그들은 재원 마련이 어려워서 시행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내가 할 수 있어 보이는 일을 다른 이들은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못한다고 단정짓기보다는 왜 안 하는지를 먼저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저소득층 생계보호를 위한 여러 소득재분배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현행의 재분배 제도가 분배의 정의를 정립시키기에 부족하다면, 혜택을 늘리고 대상자를 확대하여 기존의 제도를 확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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