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008 겨울, 로또가 마구 팔린다

입력 2008-12-11 10:35 수정 2008-12-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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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기 스타 땡처리와 중고용품은 오히려 위기

짙어가는 불황의 그늘 속에서 대박의 꿈을 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업종을 불문하고 무차별적으로 진행 중인 경기 침체에서도 사행사업은 예외다.

로또ㆍ카지노ㆍ경마ㆍ경정ㆍ인터넷 도박 등 소위 '한탕 사업'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로또명당으로 소문난 서울 판매점에는 주말이면 지방에서 봉고차를 동원한 단체 구매객이 몰리고 가계 수입이 줄면서 유모차를 몰고 온 주부들이 로또 판매점을 찾고 있다.

2008년 겨울. 삶에 찌든 이들은 마지막 선택으로 '확률'에 올인하고 있다.

◆경기한파로 로또 매출 급증세

지난 5일 불황을 살아가는 직장인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서글픈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발표한 남녀 직장인 1213명 대상 '복권구매' 실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80.3%가 복권을 구매하고 있다.

이들 중 '이전보다 복권 사는 것을 줄였다'는 응답은 8.6%에 불과한 반면 '변함없다'는 51.7%, '늘어났다'는 응답은 39.5%였다. 경기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10명 중 4명은 대박을 쫓아 복권 구입을 늘린 셈이다.

실제로 경기 침체가 본격화된 9월 이후 로또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 이상 증가했다. 2003년 이후 해마다 로또 판매율이 12%씩 줄었던 점을 감안하면 판매량 증가폭은 엄청나다.

11일 나눔로또에 따르면 올 초부터 5월까지 지난해 대비 줄어들던 로또복권 판매액은 6월 이후에는 월평균 적게는 20억원에서 많게는 80억원씩 늘어나는 추세다.

'세계 최초 1등 10번 당첨'으로 널리 알려진 서울 상계동의 한 로또판매점을 찾은 날은 10일 오후 3시경이다.

70대 노인부터 유모차를 끌고 온 주부에 이르기까지 평일 오후임에도 로또 구매를 위해 찾아온 이들이 꽤 많았다.

전국 최고 매출을 자랑하는 이 점포의 일주일 로또 구매객은 평균 4만명에 달하면 2억원 이상의 로또를 판매한다.

전국의 로또 판매점이 7200여곳에 이르고 주간 평균 판매액이 440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수치다.

실제로 토요일이면 로또 구매를 위해 200m 이상 줄이 이어지는 장관(?)이 연출되는가 하면 인근 교통이 마비상태에 이른다고 한다.

김현길 사장은 “지방에서 봉고나 버스를 동원해서 오는 손님도 꽤 많다”며 “경기 침체가 본격화된 지난 9월 이후 로또 매출이 20% 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또 “주 고객층이 40~50대 남성인데 최근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서 주부 손님도 많이 늘었다”고 전했다.

로또 구매를 위해 서울 강남구에서 왔다는 H씨.

그는 실제 작년 말 2등 당첨으로 6200만원의 당첨금을 받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부러워할만 하지만 H씨가 들려준 얘기는 다르다.

그는 “작년 2등 당첨 이후 로또 1등에 대한 집착이 더 강해졌다”며 “전국 로또 명당으로 알려진 매장을 안 가본 곳이 없다”고 전했다.

H씨는 “로또 2등 당첨 이후 매주 평균 100만원어치씩 로또를 구매한다”며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토로했다.

주부 K씨는 유모차에 8개월 된 아이를 태우고 왔다. 결혼 전 모아둔 돈으로 매주 10만원씩 구매하고 있다는 K씨는 “남편 수입이 크게 줄고 살림도 팍팍해지면서 믿을 건 로또 밖에 없다”고 밝혔다.

같은 날 로또 도입 초기부터 종로에서 로또 판매점을 운영하고 있는 L사장을 만났다.

요즘 로또 판매량을 묻는 질문에 대해 L사장은 "9월 이후 매출이 부쩍 늘었다"며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가 아니라 꼭 돼야 한다며 꽤 많은 금액을 구매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밝혔다.

L사장은 또 "남루한 차림으로 토요일마다 수 십만원씩 구매하는 사람도 많다"며 “돈 벌어 좋기는 하지만 괜히 죄 짓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814만5060분의 1이다. 매주 10만원씩 로또복권을 구매한다고 가정하면 1500년을 사야한다는 계산이다.

지난 314회까지 1등 당첨자는 1675명, 일인당 평균 24억원 당첨금, 최고액은 407억원이다. 최다당첨자는 3번 당첨돼 총 49억원을 수령한 반면 안 찾아간 1등 당첨금은 총 17명 439억원이다.

◆도박중독률 9.5%, 선진국 4배 수준

작년 기준으로 국내 사행산업 매출액은 총 14조6000억원.

매출액 중 경마로 인한 수입은 6조5000억원으로 전체 매출액의 45%를 차지했다.

한국 마사회가 예상하는 올해 경마 매출액은 전년대비 13% 성장한 7조4000억원이다.

강원랜드 내국인 카지노는 순매출액이 1조원을 넘어서며 경마에 이은 두 번째 사행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불황에 잘나가는 업종 특성을 반영하듯 강원랜드는 올 3분기 순이익 965억원으로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올렸다. 입장객 수는 지난 10월 말까지 240만4948명으로 전년동기 대비 19.1% 늘었다.

불법적인 사행산업은 더 큰 문제다.

국무총리실 소속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10일 배포한 실태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사행산업의 급성장으로 인해 카지노 지역범죄가 2000년 14.3%에서 2007년에는 30%로 배 이상 증가했다. 도박중독률 역시 9.5%로 선진국 보다 4배 정도 높은 수준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밝힌 작년 말 기준 인터넷 도박 사이트는 최소 1600개에 이른다.

경찰청은 지난 10월 18일부터 한달간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집중 단속해 1681명을 입건하고 729개 도박 사이트를 폐쇄 조치했다.

◆폐업전문 업체는 ‘폐업 위기’

불황이 깊을수록 호황을 구가한다고 알려진 ‘땡처리 업체’는 최근 고전하고 있다.

신규 창업이 급감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건을 찾던 서민층이 아예 소비를 안 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특히 황학동 폐업점포 전문 매장은 아이러니하게도 ‘폐업위기’에 몰리고 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는 최근 부도난 트래드클럽 신사복을 ‘땡처리’하는 특판매장이 있다.

10일 방문한 매장에는 “살고 싶습니다”라는 자극적인 플랭카드와 함께 최고 70%까지 할인 판매하고 있다. 한때 30만원을 호가하던 신사정장이 4만8000원에 판매되고 있지만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판매원은 “정말 공짜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싸게 팔지만 고민하다가 구매를 포기하는 손님이 많다”고 밝혔다.

소위 '땡처리 업체'는 폐업 물건은 넘쳐나지만 신규 창업이 원체 없다 보니 '아사(餓死)' 직전이다.

500여 개 점포가 몰려 있는 국내 최대 중고품매장인 황학동 중고시장도 쌓여만 가는 중고 주방기구, 가전제품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10년 넘게 중고용품점을 운영했다는 K사장은 기자에게 “파는 사람은 넘쳐 나는데 살려는 사람은 없다 보니 재고가 쌓여만 간다"며 "폐업 주문이 와도 다들 꺼린다"며 요즘 황학동 분위기를 전했다.

원체 신규 수요가 없다 보니 물품을 고물상에 넘기는 경우도 많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

K사장은 “최고 3000원까지 나가던 스테인레스 시세가 최근에는 500원대까지 떨어졌다”며 “폐업 전문업체가 폐업 위기에 처해있다”고 토로했다.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2008년 세밑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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