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미의 소비자 세상] IT강국 한국에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는 요원한가?

입력 2020-12-08 18:05 수정 2020-12-09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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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공동대표

최근 선배네 가정에서 일어난 변화다. 코로나19 무증상 감염자 확산 때문에 직장에 다니는 미혼 자녀들이 재택근무에 들어가자, 이들의 식사를 챙기는 60대 어머니가 자녀의 도움을 받아 ‘마켓컬리’ 앱에서 첫 주문을 한 뒤 이제는 혼자서 척척 앱으로 장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모바일 쇼핑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던 이가.

요즘 동주민센터나 병원에서도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휴대폰으로 큐알코드를 발급받아 본인인증을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코로나19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국민의 삶 전반에 디지털 기술을 침투시키고 있다. 정보화 기기를 다루는 데 익숙지 않아 정보 비대칭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노년층에서도 디지털 기술 이용이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생활의 변화는 의료기관 이용에서도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병원 진료를 휴대폰으로 예약할 수 있는 앱만 해도 여러 업체가 성업 중인데, 코로나19 확산 이후 앱 업체들이 거래하는 여러 병원들에서 진료 예약을 앱으로 하는 환자 비율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환자가 병원을 방문하기 전에 앱으로 사전문진표를 작성하거나, 병원 방문 시 키오스크 기기에서 문진표를 작성하게 하는 서비스도 인기다. 환자의 병원 체류시간을 줄여 방역에 만전을 기하려는 병원의 욕구와, 병원에 짧게 머물러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을 줄이고 싶어 하는 소비자들의 욕구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편의성 증대도 소비자의 이용을 늘리는 데 한몫했다.

코로나19가 대면 치료에 장애 요인이 되면서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치료제 시장이 아직 초기 단계지만, 미래 전망은 밝을 것으로 내다본다. 미국의 시장조사·컨설팅업체 ‘얼라이드 마켓 리서치’가 올해 1월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세계 디지털 치료제 시장은 2018년 21.2억 달러에서 2026년 96.4억 달러로, 연평균 19.9%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세상이 이렇게 디지털화하고 있는데도, 얼마 전 우리 국회에서는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청구를 전산화하자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개정안은 소비자가 병원 진료를 받은 뒤 실손보험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병원에 요청하면, 병원이 서류를 보험사에 전산 시스템으로 보내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지금은 전국 약 9만7000여 개의 의료기관 가운데 세브란스병원 같은 주요 대학병원 등 일부 의료기관만이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에 참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수많은 소비자들이 실손 보험금 청구를 하려면 병원에서 종이 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넘겨야 한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연간 9000만 건에 이르는 실손보험 청구의 76%가 종이 서류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보험사 앱이나 이메일로 청구 서류를 보낼 때도 병원에서 발급받은 종이 서류를 스캔받거나 촬영해 보내기 때문에 결국 보험사 직원이 전산에 입력해야 해, 사실상 종이 서류 청구가 99%에 이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종이가 낭비되고, 편리한 방법이 있는데도 소비자와 보험사가 큰 불편을 겪고 있다.

2일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는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의사들의 반대 주장을 받아들인 몇몇 의원들의 반대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번에는 개정안 통과를 위해 금융위원회도 적극 나섰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10월 27일 당시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나라처럼 정보기술(IT)이 발달한 나라에서 보험금 청구를 위한 의료비 증빙서류를 전자문서로 자동으로 보내지 못하고 종이 서류로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하고 있는 상황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개정안 통과를 위해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금융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 소비자와함께 등 시민단체들도 이전부터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도입을 촉구해 왔다. 시민단체들은 의사들이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시행되면 의료기관 비급여 진료의 투명성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반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번에 여야 의원이 각각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정무위 법안심사소위 통과에 실패했기 때문에, 정무위 의원들이 교체되는 21대 국회 후반기에나 다시 개정안 통과를 기대해야 할 상황이다. 앞으로 정치권을 비롯해 금융위와 시민단체, 보험업계, 의료계가 소비자의 권익 증진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이견을 조정해나감으로써, 이른 시일 안에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가 법제화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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