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완의 복지 플랫폼] 집이 안전하지 않은 아이들

입력 2020-09-17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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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수요일 오전, 기초생활수급 가정에서 열 살, 여덟 살 어린 초등학생 형제가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라면을 끓이다가 불이 크게 나 중태에 빠진 사건이 일어났다. 학교 대신 집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에서, 집이 안전하지 않은 아이들의 문제가 코로나19로 인해 증폭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아동에게 주거환경의 중요성, 물리적 공간의 불평등 문제는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지적되어왔다. 습기와 곰팡이가 많은 집에 사는 아동은 천식 발생률이 높고, 침실을 타인과 공유하는 아이들은 수면 시간과 질이 떨어진다. 단독 화장실이 없는 집에 거주하는 아동은 심리적인 불편함을 넘어서 실제로 위생 문제로 질병 발생 확률이 높고, 성추행 등의 피해를 경험하는 빈도도 잦다고 보고된다. 우리나라 인구주택 총조사(2015)에 의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조건에 미달하는 열악한 주택이나 지하방, 옥탑, 쪽방, 컨테이너 등에 거주하는 94만 명의 아이가 있다. 우리나라 아동의 10명 중 1명이 주거빈곤에 놓여 있는 셈이다. 코로나 상황이 되자 물리적 공간인 주거환경의 격차는 더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하루의 3분의 1을 학교라는 공동의 공간에서 친구들과 같은 급식을 먹으며 공부하고 생활하던 시간이 줄고, 사적 공간인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늘어났기 때문이다.

돌봄의 공간으로서의 집은 어떠한가? 주거 과밀의 경우 자녀에 대한 부모의 반응성이 떨어지고, 가족갈등과 아동에 대한 처벌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지적되어왔다. 주거빈곤으로 인한 부모의 스트레스가 아동에게 전가되어 주거빈곤에 의한 직접 스트레스와 부모를 통한 간접 스트레스라는 이중의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와 소득 등의 경제적 불안정성이 커지거나, 좁은 공간에서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져 가사와 돌봄 강도가 높아지면서, 부모가 받는 스트레스가 아이에게 전가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아이들의 만성 스트레스와 우울과 불안이 증가하고, 돌봄체계가 취약한 저소득 맞벌이 가구나 한부모 가정에서는 아동의 영양 부족과 비만 증가도 눈에 띄게 나타난다.

학교의 대안적 학습 공간으로서 집의 불평등이 가져오는 교육 격차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주거빈곤 아이들은 집에서 원격학습에 몰두할 조용한 공간이나 학습을 도와줄 부모가 곁에 없어 방치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학력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코로나19가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면서, 충분한 지도감독이 없는 상황에서의 재택학습과 사회적 소통의 질은 학교 학습이나 대면 서비스에 비해 낮을 수밖에 없고, 디지털화의 증가가 성적 착취나 사이버 폭력의 위험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면서 각국의 정책적 관심을 환기한 바 있다.

이처럼 코로나19의 위험이 주거빈곤 문제와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아동에게 심각한 문제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현 상황은 세계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 10일 국제민간구호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의 지원을 받는 전 세계 빈곤아동들에게 미치는 코로나19의 영향을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가 닫힌 후 부정적 감정을 더 자주 느낀다는 빈곤아동은 첫 4주간 62%에서 다섯 달째가 되자 96%로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가정폭력을 경험한 아동이 32%, 조사된 빈곤 아동 중 1%도 안 되는 아이들만이 원격학습을 위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선진국인 영국과 미국에서 아이들의 건강과 방역에 관한 한 가장 보수적인 집단인 소아과 의사들이 코로나19로 방치된 아이들을 다시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은 맥락이다.

학교에 가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니다. 집이 안전하지 않은 주거빈곤 아이들에게 주거환경 개선은 무엇보다 시급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될 때마다 학교, 복지관, 문화센터 등의 공공 공간들을 쉽게 문 닫는 대신 지역사회 아이들이 더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취약계층 아이들의 식사와 학습을 돌보고 챙기는 대면 돌봄과 교육 서비스야말로 사회적 거리두기 시기에 더욱 필요하다.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을 여건이 되지 않는 취약계층 아이들을 가까운 복지관에 오도록 해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의 지도 아래 원격수업을 듣게 하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초록e스쿨’은 하나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아동은 제대로 입고 먹고 교육받고 안전한 곳에 살면서 건강한 발달에 필요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 27조에 제시된 이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야말로 바로 지금 우리 사회가 미래를 위해 가장 먼저 투자해야 할 복지의 우선순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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