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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욱의 전쟁을 바꾼 경제 이야기] 5. 동·서양 운명 가른 군사혁신

입력 2020-08-05 18:05

중국서 발명된 화약, 유럽서 발전시켜 ‘전세 역전’…배경엔 탄탄한 국가재정

21세기에 접어든 지도 벌써 20년이 지났지만, 신문의 ‘글로벌’ 뉴스 면을 보면 유럽과 북미 등 이른바 서양세계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대체 언제부터 서양은 세계의 다른 지역을 압도하기 시작했을까? 전쟁사를 공부하다 보면, 전환점이 되는 시기가 바로 15세기 말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15세기 이전까지 동양 군사력 우위

15세기 이전만 해도 동양은 서양에 우세를 점했다. 실제 역사의 주요 전투를 보자. 예를 들어 1241년 발슈타트 전투에서 폴란드와 독일의 기사단이 몽골의 기병대에게 처참한 패배를 당했고,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동로마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불과 백 년이 지나지 않아 전세 역전이 벌어졌다. 포르투갈이 1509년 다우 해전에서 인도양의 패권을 거머쥔 데 이어, 1571년 스페인과 베네치아가 주도한 신성동맹이 레판토에서 오스만 제국의 함대를 격파하는 데 성공했다. 육상전에서도 마찬가지로, 1529년 오스만 제국군이 빈 공방전에서 패배한 이후 오스만 제국은 유럽 국가와의 전쟁에서 일방적인 우세를 점하기 어려워졌다.

유럽이 그간의 약세를 벗어나 ‘역전’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화약’ 무기의 도입과 발전에 있다. 물론,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화약을 발명한 곳은 중국이다. 140년을 살았다는 전설적인 의원, 손사막(孫思邈)이 쓴 책 ‘단경(丹經)’에는 “목탄과 초석 그리고 유황을 배합함으로써 화약을 만들 수 있다”고 기록돼 있는데, 이것이 흑색화약이다. 실제 전투에 화약을 활용한 것도 중국이 먼저였다. 송나라 때는 대나무 마디를 뚫어서 총신을 만들고, 화약을 넣은 후 대나무 한쪽 끝 입구에 작은 돌을 밀어 넣은 뒤 다른 쪽에 구멍을 뚫어서 심지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만든 ‘돌화총(突火銃)’을 개발하기도 했다.

300년 뒤 명나라 말기에 이르면 화약 무기는 기병을 상대하는 데 효율적인 도구로 부상했다. “기병은 50보 앞까지 와서 활을 쏘겠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조총(鳥銃), 불화살, 블랑기포(彿郞機砲) 등은 활보다 사정거리도 길고, 정확도도 훨씬 높으니 누가 당해내겠는가? 수만 명의 적이 산을 부수고 강을 메울 것 같은 기세로 달려들더라도 나는 가만히 앉아 화기만 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명나라 말기 장수였던 척계광(戚繼光, 1528~1588)이 남긴 기록이다. 당시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불패의 명장이 한 말이니 허투루 듣기 어렵다.

프랑스, 백년전쟁 때 청동대포 성공

그런데, 척계광 때 주력이 된 화약 무기는 중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역수입된 것이었다. 화약무기의 탄생은 중국에서 시작되었지만, 본격적인 개선은 유럽에서 이뤄졌던 셈이다. 왜 중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화약무기가 빠르게 개선되었을까?

이것을 알아보려면 15세기 말 유럽의 ‘군사혁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483년 프랑스 국왕이 된 샤를 8세(재위기간 1483~1498)는 당시 기독교 세계를 위협하는 오스만 제국을 꺾고 유럽의 패자가 되겠다는 야망에 불타고 있었다. 이를 위해 그는 막강한 포병(砲兵)을 육성했다.

유럽에 화약이 처음 전해진 시기는 14세기 무렵이다. 처음에는 적의 성벽을 뚫는 데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과의 백 년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군사혁신이 나타났다. 프랑스 왕실의 대포 제작자들은 교회 종을 주조하는 데 사용된 기술을 이용해 가볍고 기동성이 향상된 청동 대포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샤를 8세는 나폴리 왕국의 국왕 페르디난도 1세(Ferdinando I di Napoli, 재위기간 1458~1494)의 사망을 계기로 남부 이탈리아를 노렸다. 당시 이탈리아는 베네치아와 피렌체 그리고 제노바를 중심으로 한 도시 국가들이 동방과의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신흥 상인 계급이 예술가를 후원하는 가운데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예술의 절정기를 만들어 내는 중이었다. 하지만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한 채 분산돼 있었다. 군사혁신에 깜깜무소식이었기에 프랑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 입장에서 대단히 매력적인 ‘약탈’ 대상이었다.

대포 앞세워 나폴리 왕국 무너뜨려

침략전쟁은 그야말로 싱겁게 끝났다. 나폴리 왕국은 밀라노 인근 모르다노(Mordano) 성에서 침략군에 대항했지만 프랑스의 대포가 일제 사격을 시작한 지 단 3시간 만에 성벽이 무너지고 말았다. 나폴리 인근의 거대한 요새 몬테 산 조반니(Monte San Gionanni)도 마찬가지 운명을 겪었다. 프랑스 군은 대포사격 8시간 만에 성벽을 무너뜨리고, 요새를 점령했다. 당시 샤를 8세가 이끄는 군대는 2만7000명 정도의 규모였다. 8시간의 전투에서 발생한 전사자는 단 10명에 불과했다. 화약무기를 발전시키고 상비군 체계를 정비한 군사혁신의 성과였다. 샤를 8세는 파죽지세로 6개월도 안되는 기간 동안 이탈리아 전역을 제패하며 유럽의 여러 나라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프랑스가 화약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영토국가 출현 이후의 막대한 재정수입에서 찾을 수 있다. 화약 무기는 기본적으로 비싼 데다 거대한 상비군을 유지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당시 프랑스는 영국과의 백 년 전쟁 이후 강력한 내부 통합을 달성하면서 세금을 마음대로 걷을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참고로 그 유명한 베르사유 궁전의 건설에 투입된 비용은 루이 14세가 거둬들인 세금의 2% 이하에 그칠 정도로 유럽 국가들은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걷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재정확충 목적…‘대항해 시대’ 촉발

프랑스의 막강한 군사력은 인근 국가를 자극했다. 이제 화약무기를 다룰 수 있는 대규모 상비군을 보유하는 것이 필수가 됐다. 재정 확충이 시급했던 경쟁국가들은 바다로 눈을 돌렸다. 이로 인해 ‘대항해 시대’가 촉발됐다. 1492년 콜럼부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서 어마어마한 귀금속이 유입됐다. 이들 국가는 용병부대를 고용하고 이들을 화약무기로 무장할 수 있게 됐다. 화약무기 대 화약무기의 경쟁이 벌어지면서 기술혁신이 한층 가속화 됐다.

같은 시기 중국에 있었던 명나라의 상황은 어땠을까? 당시 명나라는 전통적인 조세제도를 담습하고 있었다. 자본주의의 초기 형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상업 활동이 활발했지만, 세금은 농민에게만 과도하게 부담될 뿐 상업과 관련한 징세 제도가 허술했다. 상업이 흥성했던 저장(浙江) 진화(金華)현의 1년 상업세가 은자 7량을 넘은 적이 없다는 기록도 있다. 같은 시기 유럽 국가들이 상공업에 대한 조세를 강화한 것과 대조적이다. 명나라에서도 공상세(工商稅)를 늘리려는 시도가 있기도 했지만 유학자 출신의 문벌귀족들의 반대에 가로막혔다. 명나라 중기 이후가 되면 북방 유목민족과 왜구의 침입까지 겹치는 통에 재정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명나라는 내수 중심 폐쇄사회 지향

유럽의 ‘대항해 시대’가 열리던 시기 명나라가 내수에 중점을 두고 폐쇄적인 사회를 지향했다는 점도 대조적이다. 유명한 정화의 원정도 송나라, 원나라 시기 개방적으로 세계 곳곳의 기술을 받아들이던 것과 반대다. 국가가 화약기술의 기밀유지에 신경을 썼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제대로 된 기술 혁신이 일어날 수도 없었다. 유럽 국가들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있었던 반면 명나라는 그렇지 않았다. 동·서양의 격차는 이때 결정적으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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