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ㆍLCD, ‘恐灣症’ 커져간다

입력 2008-03-24 16:10 수정 2008-03-24 16:54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대만업체 약진에 '대만 공포증' 확산

지난 14일 국내 반도체 업계는 적잖이 당황했다. TSMC, 파워칩, 뱅가드 등 대만의 반도체 3사가 연합해 무려 14조원이라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D램 가격 급락으로 전세계적으로 업체들의 실적이 악화된 상태여서 오히려 투자 규모를 줄일 걸로 예상했던 국내 반도체 업계는 대만의 예상 밖 강수에 '한 방 맞은' 분위기다.

특히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가 파워칩, 뱅가드와의 합작 설비 투자와는 별도로 연구개발에만 무려 50억달러를 쏟아붓기로 한 것이나 신주과학단지 내 12인치 라인에서 32나노 이하 초미세공정을 개발하겠다고 나선 것은 큰 충격이다. 30나노 이하 메모리 생산공정은 아직 두 회사도 양산 계획을 못 세운, '첨단기술'이기 때문이다.

◇대만업체들 얼마나 컸나?

TSMC의 이번 결정은 대만 업체들의 급성장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지난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위탁생산업체에 불과했던 대만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좌우할 정도가 된 것이다.

매출액 기준 세계 100대 IT기업도 13개(한국 5개)나 되며 애플 아이팟, 닌텐도 게임기, 노키아 휴대전화 같은 유수 IT제품의 80% 이상이 대만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권기덕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난 10년간 대만 IT업계가 연평균 32.5% 성장했다”며 “2006년 기준으로 세계 IT산업 매출의 10.5%를 차지, 한국(6.5%)을 제치고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3위로 부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메모리, 비메모리, 파운드리, 조립 등을 포함한 지난해 대만 반도체산업 매출액은 무려 469억5100만달러로 같은 기간 우리의 460억달러를 앞섰다. 지난 2006년에는 대만 420억달러, 한국은 431억 달러였지만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특히 대만은 연말까지 생산성이 높은 300mm Fab(반도체 생산공정시설) 18개를 추가 건설해 세계 반도체 생산시장 점유율을 지난해 20%에서 올해 3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대만 기업과 손 잡아야 세계를 점령할 수 있다"는 얘기가 정설이 됐다. 반도체만 놓고 봐도 시장 점유율은 아직 낮지만 세계 유수의 메모리 업체들을 쥐고 흔드는, 사실상의 ‘갑’이 됐다는 것이다.

대만 업체들의 성장 요인은 '중국 활용'이다. 중국을 저가 생산기지로 활용하면서 최단 납기를 실현해 이 분야 세계 1위로 올라선 것이다. 또 2000년대 들어 그간의 단순 위탁생산에서 벗어나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한 ODM(제조자 디자인 생산)으로 전환한 것도 성장에 기여했다.

또 대만 정부는 신주과학단지를 미국 실리콘밸리처럼 키우겠다며 법인세 감면, 대출금리 할인, R&D 보조금 같은 강력한 지원정책을 폈고 그 결과 반도체 분야의 TSMC, LCD 분야의 AU옵트로닉스(이하 AUO) 등을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냈다.

TSMC는 지난 10년간 평균 수익률(31%)이 MS(30%)나 구글(24%)보다 높으며 AUO는 지난해 4분기 LCD에서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를 능가하는 실적을 기록했다.

또 디스플레이서치가 펴낸 지난해 4분기 LCD TV 생산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대만산(AUO, 치메이, CPT) LCD TV용 패널 구입율은 무려 65.2%에 달한다. 같은 기간 구입한 480여만장의 TV용 패널 중 300만 장 이상이 대만산이었던 것이다. 1분기에는 이 비율이 54.3%였음을 감안할 때 대만산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LG전자 역시 같은 기간 대만산 패널 구매 비율이 31.3%(24만3000장)에 달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LG전자 등이 패널의 교차 구매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져 왔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논의만 진행형'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일본의 관련 업계는 엘피다의 D램 제품이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제품보다 가격이 더 비싸지만 전략적으로 구매해주는 분위기가 있다"며 "LCD 제조사와 완제품(풀세트) 업체 간 교차구매가 국내 산업경쟁력 제고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업체들은 '한국 타도' 외치는데...

대만뿐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의 업체들도 상호 협력을 통해 '한국 추격'의 고삐를 죄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최근 대만의 난야테크놀로지는 미국 마이크론과 손잡기로 했으며 대만 프로모스는 50나노미터(㎚) 기술도입을 조건으로 하이닉스반도체와 미국 마이크론, 일본 엘피다를 놓고 저울질 하고 있다.

대만 UMC는 일본 엘피다와 손잡고 일본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을 펼치키로 했다. UMC는 TSMC에 이어 세계 2위 파운드리 회사다. 대만의 파워칩은 이미 일본 엘피다메모리와 제휴했다.

또 ST마이크로 측은 최근 NXP(옛 필립스반도체)·ST마이크로·인피니언의 유럽 빅3 반도체업체가 R&D·반도체 설계·파운드리 등 모든 프로세스를 통합한 대연합을 이끌어내 달라는 청원서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비메모리 분야를 한 회사처럼 운영, R&D 및 제조비용을 절감해 몸집을 키우자는 제안이다.

히타치제작소와 미쓰비시전기 반도체 사업부가 합친 르네사스테크놀로지는 최근 마쓰시타와의 반도체 공동 개발을 선언했다. 이 회사는 이미 샤프와 양사 LCD드라이버칩 사업조직을 통합했다.

LCD업계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일본 샤프는 소니와 함께 내년 4월 4조4000억원을 들여 오사카에 10세대 LCD라인을 건립한다. 소니가 그동안 삼성전자 7, 8세대 LCD라인에 공동투자하고 여기서 LCD를 공급받아왔음을 고려할 때 삼성전자는 큰 고객을 잃은 셈이다.

세계 LCD 업계 3위, 4위인 대만 AUO와 CMO는 내년 가동을 목표로 각각 8.5세대와 8세대 LCD패널 공장투자를 본격화한다.

세계 PDP TV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 마쓰시타는 도시바, 히타치 디스플레이와 합작해 설립했던 IPS알파테크놀로지 지분을 대거 인수했다. 이는 마쓰시타의 LCD시장 직접 진출이며 규모를 고려할 때 조만간 마쓰시타연합이 세계 LCD 업계를 뒤흔들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실제로 PDP 제조사업에서의 철수를 공언했던 일본 파이오니아는 마쓰시타의 패널을 활용해 PDP TV 사업을 지속한다며 기존 방침을 번복하기도 했다.

◇우리 업체들, 손 놓고 있나?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의 요즘 상황은 경쟁업체들은 숨가쁘게 쫓아오고 이를 견제해야 할 우리 업체들은 적 앞에서 사분오열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 엘피다의 경우 지난해에야 3% 영업이익률을 내며 처음 흑자 전환한 회사지만 올 하반기 중 50나노급 생산체제를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력에서 이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바짝 쫓아온 것이다.

하지만 국내 메모리 반도체 소자기업들은 전체 생산 장비의 80% 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또 하이닉스가 대만 프로모스테크놀로지스에 D램 공정기술을 이전하는 문제와 관련 기술유출 여부를 놓고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는 갈등을 보였다. 삼성전자와 LG 측은 부족한 패널을 여전히 대만업체들로부터 구입하면서 이들의 배를 불려주고 있다.

이같은 협력 미비는 곧바로 부품공급 협력업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에 LCD 부품인 백라이트유닛(BLU)을 납품해 온 우영이 만기 도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흑자 도산한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경쟁업체들의 합종연횡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 역시 지난 1월 테라비트급 차세대 비휘발성 메모리소자 원천기술 공동 개발에 합의했다. 하지만 협력의 수위가 경쟁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데다 하이닉스의 기술 유출 논란이 일면서 모처럼의 협력 분위기는 시들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공급과잉에 따른 장기 불황으로 급락하는 상황"이라며 "대만의 추격을 계기로 비메모리 분야 투자 확대, 팹리스 업체대형화 추진, 팹리스와 메모리 간 연계 등 상생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수 하이닉스반도체 상무는 "일본, 대만, 유럽 기업들의 합종연횡은 차세대 핵심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한 것"이라며 "우리도 국내외 업체들과 협력해 제품과 기술의 도입 및 확보 등에 대해 장기 로드맵을 세우고 내부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항상 화가 나 있는 야구 팬들, 행복한 거 맞나요? [요즘, 이거]
  • 지난해 '폭염' 부른 엘니뇨 사라진다…그런데 온난화는 계속된다고? [이슈크래커]
  • 밀양 성폭행 가해자가 일했던 청도 식당, 문 닫은 이유는?
  • '장군의 아들' 박상민, 세 번째 음주운전 적발…면허 취소 수치
  • 1000개 훌쩍 넘긴 K-편의점, ‘한국식’으로 홀렸다 [K-유통 아시아 장악]
  • 9·19 군사합의 전면 효력 정지...대북 방송 족쇄 풀려
  • 단독 금융위 ATS 판 깔자 한국거래소 인프라 구축 개시…거래정지 즉각 반영
  • KIA 임기영, 2년 만에 선발 등판…롯데는 '호랑이 사냥꾼' 윌커슨으로 맞불 [프로야구 4일 경기 일정]
  • 오늘의 상승종목

  • 06.04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6,555,000
    • +0.45%
    • 이더리움
    • 5,235,000
    • -0.68%
    • 비트코인 캐시
    • 652,500
    • +0.54%
    • 리플
    • 730
    • +0.97%
    • 솔라나
    • 230,600
    • +0.96%
    • 에이다
    • 635
    • +1.11%
    • 이오스
    • 1,107
    • -1.77%
    • 트론
    • 158
    • -0.63%
    • 스텔라루멘
    • 146
    • -0.68%
    • 비트코인에스브이
    • 85,350
    • +0.59%
    • 체인링크
    • 24,520
    • -1.84%
    • 샌드박스
    • 630
    • -0.94%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