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좌파와 그 아이들(1)

입력 2008-03-11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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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느 모임에 갔었다. 모두들 오랜만에 만난 터라 이런 저런 얘기로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그러던 중 1시간이나 늦게 참석한 한 사람이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었다. 그가 앉자마자 분위기를 깨는 말을 해댔기 때문이다. 혼자서 지난 정권들의 좌파적 행태와 정책들을 옹호하는 주장을 해댔다. 그는 지난 정권 시절 친여 일간신문을 한동안 책임진 사람이었다. 저이는 으레 저런 주장을 하나보다 하고 넘어가긴 했지만, 평소에도 동정이라곤 조금도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좌파였다. 그러나 그의 이력을 들여다 보면 좌파를 할 그런 경력은 아니었다. 그런데 실제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분명 좌파적 색깔을 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 경력과는 다르게 좌파적 사고와 행태를 나타나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치인, 사회 지도층, 노동계, 기업인 중에 그런 사람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사람들 - 좌파적 경력을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좌파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 - 이 사회 여러 분야에 있을까. 그것은 그들이 실제로는 지식인이나 지도층 대열에 속한 사람이면서도 자신이 프롤레타리아라고 자처하고 있는데 그 원인이 있다. 자생 프롤레타리아가 생겨난 것이다.

그들은 왜 자신들을 프롤레타리아라고 자처할까. 그 이유를 살펴보자. 우리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처음부터 서구처럼 산업노동자와 농민이 주축을 이루지 못했다. 즉 우리 사회의 프롤레타리아는 노동자•농민 등 기초 계층이 수적(數的)으로 열세여서 계급적 성격을 이룰 인적•물적 토대가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프롤레타리아는 자연히 계급적 성격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그 결과 60년대 산업화 초기에는 산업노동자 형성이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 노동자와 농민들은 연대•결속하기보다는 서로 경쟁하는 바람에 분열 또는 대립관계에 있었다. 이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가 우리 사회에 전파되었어도 이를 수용할 프롤레타리아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기현상이 그 당시 나타났다.

이에 따라 프롤레타리아는 계급적 성격보다는 관념적인 존재로 남게 됐다. 그리고 그 주류 계층은 노동자•농민이 아니라 쁘띠 부르조아(petit bourgeoisie) 위치에서 탈락한 지식인과 대도시의 몰락한 자영상공인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사회의 주류계층이고 상류계층이라고 자처했는데, 자본주의 도래로 그들의 지위가 사회에서 탈락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즉 자신들을 몰락으로 이끈 주요 사회변동 요인이 자본주의의 침탈과 부르조아 등장에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자연히 프롤레타리아로 자처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몰락한 반(反)부르조아 지식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관념적인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다. 그들은 실제로는 프롤레타리아 계층이 아닌데도 관념적으로 스스로 프롤레타리아로 자처했다.

바로 이런 현상이 몰락한 지식인과 자영상공인들이 프롤레타리아로 자처한 이유다. 현재도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제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닌데도 자신이 프롤레타리아 대열에 속한다고 여기는 관념적 프롤레타리아가 상당수 존재한다. 최근 만난 그 사람도 바로 이런 류의 자칭 프롤레타리아 지식인에 속하는 부류다. 그러나 이들의 거의 대부분은 중산층 또는 상류층 계층이지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로 자처한 그들은 그들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적극 수용했다. 이것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비서구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가 가지는 특징이다. 그러나 이런 특징은 곧 우리 사회의 사회주의가 갖는 한계점이기도 했다. 비서구사회의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는 계급투쟁의 의미보다는 이상주의적이고 지적(知的) 관념을 주류로 삼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사회주의는 현실적인 인식보다는 관념적 이상을 추구하고 있어서 현실과 괴리가 있다.

지난 10년간 좌파 정권들의 실정(失政)은 그들의 사회주의적 이상을 말로 주장할 줄만 알았지 이를 현실 정책에 실효성있게 반영하거나 수행할 이론적 배경이나 능력을 갖추지 못한데서 비롯되었다.

둘째,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는 극단적 과격성을 갖는다. 그러한 급진성은 사태 해결보다는 급진성 그 자체를 부각시키고 미화한다. 따라서 파괴를 위한 파괴가 가장 중요한 전략적 행위가 되며, 극좌 모험주의 성향이 지배한다.

80년대 이후 강경 좌파 노조가 추구한 노선이 건전한 노사화합보다는 폭력을 동원한 일방적인 투쟁이었다. 이런 투쟁 노선은 극좌 모험주의에 입각한 파괴적 일탈행위에 다름 아니었다.

셋째, 비서구사회의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자들은 지식인의 지도적 기능을 강조한다. 노동자의 계급적 형성이 미약하고 농민의 계급의식이 결여되어 있어서 지식인들이 자연히 사회주의 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는 노동자나 농민의 사회주의 운동이라기보다는 한계상황에 놓인 지식인들의 저항운동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지식인들은 한계상황에 놓여 있을 때 급진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계상황을 벗어나거나 어떤 참여 또는 신분 상승의 기회가 주어지면 그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포기한다.

우리 사회의 좌파들은 이런 한계상황을 극복하려 하기보다는 북한 등 외부 세력과 연계해 자신들의 입장을 강화하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가 시대에 맞지 않거나 오류임을 알았더라도 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고집스럼도 문제다.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면 혹시 그 동안 쌓은 사회적 위치나 성과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어서 일게다. 그러나 그들이 양식을 가진 지식인이라면, 그리고 건전한 사회 구성원이라면 오류를 인정하고 새 길을 모색하는 것이 자신과 우리 사회를 위한 길이라 판단한다. 더 이상 그들이 우리 사회에 부담되는 존재로 남아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타임즈 최재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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