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판, 세상판] 영화계, 1996년 체제를 종식시켜야

입력 2017-01-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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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불안한 나날이다. 탄핵은 과연 인용될 것인가.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걸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조바심이 인다. 여전히 상식 이하의 고집을 피우고 있는 국정 농단의 주체들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여러 사람들의 심신을 지치고 피곤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국 사회에서 박정희가 드리운 왕가(王家) 40년의 통치(아무도 원치 않았던 통치)가 종식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에 맞춰 이른바 1987년 체제의 전환을 발 빠르게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세상사, 꼭 나쁜 일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영화계 역시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의 주요 사안인 ‘블랙리스트’ 파문의 핵심 피해자로서, 그 충격을 가라앉히고 또 극복하기까지 일정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이 고발되고, 사무국장이 해임되는 등 영화계도 현 정부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이미 걷어내기 시작한 상황이긴 하다. 그러나 영화계 역시 정치권처럼 근본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다. 정치권이 1987년 체제를 청산한다면, 영화계는 1996년 체제를 종식시켜야 한다.

1996년, 영화계는 일대 변혁을 겪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헌법재판소가 ‘모든 검열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려 숙원(宿願)이었던 표현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받기에 이른 것이 가장 획기적인 일이었다. 서울 구의동에 세워진 강변CGV를 시작으로 멀티플렉스가 전국 곳곳에 들어서기 시작한 때도 그 시기였다. 그리고 부산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첫 회의 테이프를 끊었다. 바야흐로 한국 영화계가 제2의 르네상스를 준비하던 때였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성과를 이뤘다. 박찬욱, 김기덕, 이창동 등 이른바 ‘뉴 코리안 시네마’의 기수들이 속속 등장했고 국내 영화 시장은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그러나 이제 그 성과도 공(功)보다는 과(過) 쪽으로 기울고 있다. 멀티플렉스가 주도했던 극장 산업은 지나친 독과점 문제로 영화산업 자체의 극단적 양극화를 초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독과점 규제는 이제는 필연적인 과제가 됐다. 한걸음 더 나아가 수직계열화(특정 영화사가 극장 체인망까지 소유하는 구조) 문제도 어떤 방식으로든 이제는 손을 대야 할 때가 왔다. 부산국제영화제도 출범 20여 년 만에 초기부터 이어져 온 지도부(집행위원회) 멤버 간 화합이 균열과 내홍(內訌)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언제까지 국내 영화제들이 부산, 전주, 부천, 제천 등 지방자치단체를 기반으로 하는 것들만을 주축으로 이뤄져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 영화제마다 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횡포’에 시달리면서 영화제 운영의 자율성을 탈취당하고, 궁극적으로는 표현의 자유마저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3년 전 상영했던 ‘다이빙 벨’ 문제로 부산국제영화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로부터의 예산이 깎이고, 급기야 기존 집행위원장이 (명백히 정치적 탄압을 위해) 검찰에 고발돼 해임되는 등 이만저만한 횡포를 당한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됐던 서병수 현 부산시장이 부산국제영화제를 갈가리 찢어 놓은 셈이다. 어디 부산영화제 뿐인가. 영화계 전체를 농단하고 훼손해 놓은 것이다.

극장 사업의 내용을 좀 고치는 것으로만, 영화제의 운영 구조를 좀 바꾸는 것으로만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다. 영화계 ‘1996년 체제의 종식’이란 영화 정책과 행정의 모든 것, 아니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를 정치와 분리하는 사고에서 탈피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영화는 곧 정치이며, 정치는 곧 영화이다. 영화계는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계 인사, 더 나아가 보다 많은 문화계 인사들을 국회로 진출시켜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문화적 전문성을 국가 정책에 올바르게 대입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백 퍼센트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사들을 국회와 정부에 포진시켜야 한다. 돌이켜 보면 영화계와 문화계가 그래도 비교적 좋았던 시절은 이창동 장관(문화관광부) 재임 때였다. 장관은 좀 그런 사람이 돼야 한다. 권력에 아부하고 끝없이 거짓말을 하는 사람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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