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 끝나지 않은 전쟁 ⑨]강진을 쳤는데 공주가 항복했다고?

입력 2016-08-2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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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임나일본부설…스에마쓰의 ‘임나흥망사’ 위치 비정 그대로 차용한 국내 사학자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가 있었다고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일본에서의 정한론(征韓論)이다. 그 이래 20세기 초반 일본의 어용학자들이 ‘가야=임나’라는 등식을 반복ㆍ재생산해왔다. 메이지 시기의 반 노부토모(伴信友), 나카 미치요(那珂通世), 간 마사토모(菅政友) 등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때의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대표적이다. 낯익은 이름들이다.

이들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에 의해 ‘임나흥망사(任那興亡史)’(1949)라는 책으로 종합ㆍ정리되었다. 그러나 1963년 김석형의 ‘삼한삼국의 일본열도 내의 분국에 대해서’라는 연구가 발표된 이래, 일본에서 임나일본부설은 쑥 들어가 버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아직도 스에마쓰의 ‘임나흥망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 김현구가 스에마쓰의 설에 따라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설 관련 지명을 한반도 남부에 끌어들여 국사를 혼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지도참조: 두 지도가 쌍둥이처럼 닮았음을 주목하시오). 김현구의 논리는 369년, 즉 ‘일본서기’ 신공(神功) 49년조의 기록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이는 스에마쓰의 출발점과 똑같다. 아래 기사는 스에마쓰의 책에 실린 관련 내용이다.

“(己巳=369年) 아라타와케(荒田別)ㆍ가가와케(鹿我別)를 장군으로 삼아 백제의 사자와 함께 바다를 건너 탁순국(卓淳國)에 이르러 신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하지만 군사의 무리가 많지 않음을 알고 다시 군사(軍使)를 일본에 보내 군사를 늘려줄 것을 청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목라근자(木羅斤資) 등을 보냈고, 탁순에 집결하여 신라를 쳐부쉈다. 이로써 비자발(比自㶱) 이하 7국(①비자발 ②남가라 ③탁국 ④안라 ⑤다라 ⑥탁순 ⑦가라)을 평정했다. 이어 군병을 서쪽으로 이동시켜 남만(南蠻) ⑧침미다례(忱彌多禮)를 무찌르고 그 땅을 백제에 주었다. 백제왕 부자(肖古王ㆍ貴須)도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만났다. 그때 비리(比利) 이하 4읍(⑨비리 ⑩벽중 ⑪포미지 ⑫반고)은 스스로 항복했다. 백제왕 부자 및 아라타와케ㆍ목라근자 등은 함께 ⑬의류촌(意流村)에 모였다. 지쿠마 나가히코(千熊長彦)는 백제왕과 함께 백제국에 이르러 ⑭벽지산(辟支山)에 올라 맹세를 하고 다시 ⑮고사산(古沙山)에 올라 맹세를 했다”(임나흥망사 56-57). (주: 번호는 필자가 첨가)

스에마쓰는 369년에 야마토 왜군이 신라를 공격해서 7국을 평정했다는 ‘일본서기’의 기사를 따른다. ‘삼국유사’의 가야 6국과 ‘일본서기’의 가야 7국은 숫자도 다르고, 이름도 서로 다르다. 그런데도 스에마쓰는 가야 7국의 위치를 낙동강 중류 이남이라고 주장한다. 위 기사의 지명들 가운데 두세 개만 살펴보면 그 논리의 한계가 바로 드러난다.

③과 ⑥의 설명에서, 스에마쓰는 “탁국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달구화현(達句火縣, 達伐)에 대응시키가 가장 쉽지만, …… 달구화는 탁순(卓淳)에 대응되기 때문에 탁국은 달구화 남쪽 3리 남짓 떨어진 압독군(押督郡)이 된다. 압독의 ‘독(督)’이 탁국의 ‘탁’과 통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압(조선어 발음 ap)은 남쪽(南)이나 앞(前)을 의미하는 조선어 ap, arp를 나타내는 것으로, 달구화의 지리적 관계로부터 생각해보면 어울리는 이름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군이다”라고 말했다.

‘탁국’이 ‘달구화현’이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거기에 비정하면 된다. 그런데 ‘탁순’을 달구화현에 비정해야 하니까 ‘압독군’은 경산에 비정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위치비정을 ‘A이지만 여기서는 B라고 한다’라고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압독군’의 ‘압(押)’이 조선어 발음의 앞(前)이니까 탁국 앞쪽의 남쪽 고을과 대응한다고 말한다. 논리적 비약이다. ‘앞’은 방위 개념이 아니라 방향만을 나타내는 상대적 개념이다. ‘앞’은 남쪽뿐만 아니라 북쪽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대구 남쪽에 위치한 경산의 옛 이름이 압독이었던 점을 들어 억지로 ‘탁국=압독군=경산군’으로 등식화시켜 버렸다. 이 불합리한 논리를 김현구는 그대로 차용했다.

⑧에 대해서도 “서쪽의 정복지로는 먼저 남만 ‘침미다례’가 있다. 이것을 하나의 지명으로 본다면 중심은 ‘침미’에 있다. ‘침미’에 관한 제일 후보지로 여겨지는 곳은 ‘삼국사기’ 지리지 무주(武州)의 도무군(道武郡) 및 그 군의 속현 중 하나인 동음현(冬音縣)이다. …… 그것은 지금의 전라남도 서남단에 가까운 강진(康津) 지방이다”라고 말했다.

스에마쓰는 침미다례에 トムダレ(도무다레)라는 조선어 발음을 일본어로 병기해 놓았다. 그리고 ‘삼국사기’를 뒤졌더니 무진주에 속한 도무군이 나왔고, ‘도무’라는 글자가 이 도무군의 ‘도무’와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도무군이 강진의 옛 땅이었으니까 침미다례는 강진이라고 비정한다. ‘이것을 하나의 지명으로 본다면’이라는 가정문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듯이 침미다례가 지명인지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침미’의 조선어 발음이 ‘도무’라는 근거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김현구는 근거가 박약하고 설득력이 결여된 위치비정을 그대로 차용했다.

스에마쓰의 책에 실린 위 기사로 다시 돌아가서 “군사를 서쪽으로 이동시켜 남만(南蠻) 침미다례(忱彌多禮)를 무찌르고 그 땅을 백제에 주었다. …… 그때 비리(比利) 이하 4읍은 스스로 항복했다”라는 내용을 살펴보자.

369년 당시 3국은 이미 정립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야 땅을 빼앗아 백제에 준 일본이 왜 다시 군사들을 서쪽으로 돌려 백제의 침미다례를 공격했을까. 또 침미다례를 공격했더니 스스로 4읍이 항복했다고 하는데, 그 지역이 전라도와 충청남도까지 떨어져 있고 공주(포미지)는 무려 200㎞ 밖에 위치한다. 왜 백제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 먼 곳의 공주가 스스로 항복했을까. 이해하기 어렵다. 지도상에서 나타난 이런 모순은 임나일본부가 설령 있었다고 하더라도 한반도 남부가 아님을 시사한다. 논리적으로나 지리적 위치 관계로 볼 때 스에마쓰의 위치비정은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어 납득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무비판적으로 스에마쓰의 설을 따른 김현구의 위치비정도 당연히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정암 희산김승학기념사업회 이사
▲정암 희산김승학기념사업회 이사

정암 프로필

동국대학교에서 지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관동대, 동국대 등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 희산 김승학기념사업회 이사로 있으면서 지도를 통한 역사 독해에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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