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주주가 '봉'인 주주총회

입력 2016-04-06 11:05 수정 2016-04-0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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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년규 부국장 겸 산업부장

#S사 소액주주는 지난달 30일 주주총회 참석을 위해 직원들이 안내하는 장소에 도착해 기다렸으나, 주주총회는 이미 다른 장소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이를 나중에 안 소액주주들이 재투표를 요구했으나 회사 측은 주총이 끝났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K사는 주주총회를 개최하면서 주주 자격을 가진 강성 노조원의 출입을 막고자, 비표를 갖고 있지 않은 주주 노조원들의 출입을 원천 봉쇄했다. 이 회사는 노조원들이 주총에서 소란을 피울 것에 대비해 경찰에 3개 중대 100여 명의 경찰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보안요원들이 주총장 출입자를 일일이 확인한 것은 물론이다.

#P사는 자사주를 가진 직원들을 동원해 주총장을 가득 채웠다. 이들은 예정된 주총 순서대로 “동의합니다. 제청합니다”를 반복하며 투표 없이 속전속결로 안건을 통과시켰다.

주주총회 시즌이 끝났으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주총의 뒷이야기가 올해 역시 무성하다.

원래 주총이란 경영진과 주주가 만나 엄숙하고 진솔하게 지난해 성과를 되돌아보고 경영 전략을 논하는 자리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 5개 내외의 안건을 내놓고 의결하는 데 20분을 채 넘기지 않는다. 기껏해야 1~2명이 일어나 의견을 개진하는 것에 그친다. 주주들이 회사 경영진의 경영 방식을 너무 신뢰하기 때문에 논의 사항이 아예 없는 것인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부분을 굳이 거론하는 것은 우리나라 자본시장 문화의 문제점이 주총에서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주가가 회사의 가치를 반영하기보다 ‘시장 거래가치’에 기반을 두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런 주총 모습은 그래도 양반이다.

뭔가 켕기는 게 있는 회사라면 주주총회는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한다. 앞에 든 사례처럼 소란을 막기 위해 직원들로 주총장을 채우거나, 질문 순서를 정하는 각본도 미리 짜놓는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가 하면, 보안요원들을 배치해 소란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기도 한다. 비단 중소기업만 그런 게 아니다. 올해 20대 대기업집단에서도 적어도 2곳에서 위와 같은 ‘꼼수 주총’이 열렸다.

주주를 봉으로 아는 이런 주총을 기획한, 적어도 용인한 기업 CEO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X이 무서워 피하나 더러워 피하지’라는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아니면 주식 몇 주 가지고 있다고 내 회사에 와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사회에서 이미 결정한 사항을 일일이 다시 동의를 받아내는 주총을 반기는 오너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회사들이 주총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것은 상장사들의 주주총회 개최일 쏠림에서도 드러난다. 올해는 코스피, 코스닥 전체 상장회사 1933개 중 42%인 805개사가 지난달 25일 주총을 동시에 개최, ‘슈퍼 주총데이’를 조성했다. 또 333개사는 3월 18일 같은 날 주총을 열었다. 지난해 역시 12월 결산 상장회사 1840개사 중 44%인 810개사가 3월 넷째 주 금요일에 집중적으로 주총을 개최했다.

같은 날 수백 개 기업이 동시에 주총을 연다면, 여러 회사의 주식을 갖고 있는 주주는 한 곳의 주총밖에 참석하지 못한다. 주주들이 참석하지 못하는 주주총회, 회사 측으로서는 반길지도 모른다. ‘슈퍼 주총데이’에 주총을 열면 안건들이 수백 개의 주총에 묻혀 지나갈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실제 우리나라는 G7 국가 및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할 때 특정일에 주주총회를 개최하는 집중도가 월등히 높다.

사업연도 종료 후 90일 이내에 주주총회를 열도록 규정한 자본시장법의 문제와 기업 편의주의가 맞아떨어진 현상이라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우 3월 말까지 사업보고서를 작성, 주주들에게 보낸 뒤 주총 승인을 받도록 해 주총이 4월 이후 흩어져 열린다. 영국, 독일, 호주 등도 대부분 회계연도가 끝나고 4~5개월 후 주총을 연다. 대만은 아예 하루 개최 가능한 주총을 200곳으로 제한하고 있다.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주주들의 의식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주주는 무시된 채 기업 편의만을 위한 주총 문화 개선 역시 건전한 자본시장 조성을 위한 또 다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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