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트럼프 현상의 원천

입력 2016-03-30 13:20 수정 2016-03-30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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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국제팀장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갈수록 흥미진진해진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이번 대선은 힐러리 클린턴 대 젭 부시의 대결이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그런데 이는 섣부른 예단이었나보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선거판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대선의 풍향계로 불리는 아이오와 코커스를 시작으로 뉴햄프셔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슈퍼화요일로 이어진 트럼프 돌풍은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들을 잇따라 자진 하차시켰고, 머지않아 대선 후보로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끊임 없는 막말 논란에 논리 없는 정책 공약에도 트럼프 돌풍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표방하며 대중을 선동하는 ‘트럼프 현상’의 원천은 그의 성장 과정에서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선 트럼프는 자기 주장이 강하고 맷집이 세다. 상대를 온갖 인신 공격으로 몰아붙이는 성향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부유한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자기 주장이 강했다고 한다. 심지어 초등학교 2학년 때 음악 선생님을 때렸는데, 그 이유가 선생님이 음악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는 것. 그의 아버지가 그를 명문 사립고교인 뉴욕밀리터리아카데미에 보낸 것도 그의 모난 성품 때문이었을 거다.

의외로 트럼프는 엄격한 교육 환경에 잘 적응했다. 그는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이 학교는 자신을 어른스럽게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자신이 갖고 있던 공격적인 성향을 건설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학교는 작년 재정난을 이유로 개교 126년 만에 문을 닫았다.

트럼프는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간파하고 있다. 특히 스펙이 중요하다는 걸 잘 안다. 그가 펜실베이니아대 비즈니스 스쿨인 와튼스쿨에 들어간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 학교는 존 스컬리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코스메틱업체를 창업한 에스티 로더의 아들 레너드 로더, 정크 본드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이클 밀켄 등 걸출한 경영인을 배출한 미국에서 손꼽히는 비즈니스 스쿨이다.

트럼프는 “학위는 아무런 증명도 되지 않지만 일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이걸 중요시한다”고 자서전에서 언급한 바 있다. 아버지 슬하에서 부동산 관리 일을 배웠지만 정작 사회에서는 경험보다는 학위가 통용된다는 걸 일찍부터 알았다는 이야기다.

트럼프는 쇼맨십이 탁월하다. 그의 쇼맨십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트럼프의 아버지는 독일계, 어머니는 스코틀랜드계 이민자의 자손. 경영 일선에 있던 아버지보다 자선가이자 주부였던 어머니의 ‘끼’를 물려받았다니 다소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부동산 관리 일을 배웠는데, 임대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세입자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오물을 뒤집어 쓰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그 일을 계속할 순 없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자선가였던 어머니처럼 대단하게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것. 구직 프로그램 ‘어프렌티스’에서 “너는 해고야(You’re fired!)”라며 멘트를 날리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도 여기서 나온 것 같다.

트럼프는 이민자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는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과거 그는 연방주택공사가 압류 물건으로 내놓은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의 주택단지를 헐값에 사들였다. 문제는 대부분의 주민이 이민자에다 극빈곤층으로, 집세를 떼먹고 야반 도주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었다. 이에 트럼프는 가재 도구를 싣는 트레일러를 24시간 감시하는 것은 물론, 불성실한 세입자가 나간 집에 안정적인 세입자를 받기 위해 주택 수리에만 80만 달러를 써야 했다. 당시로는 엄청난 거액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건 그가 ‘몹쓸’ 사람도 부릴 줄 안다는 것이다. 당시 트럼프는 어빙이라는 남자를 주택관리인으로 뒀다. 어빙은 허풍선이에다 사기죄로 여러 번 감옥엘 드나들었던 인물. 트럼프 역시 이를 잘 알았다. 그럼에도 어빙을 채용한 건 그가 사기꾼이기 때문에 부하 직원들의 부정 행위도 잘 잡아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그의 엉뚱한 판단은 적중했다. 트럼프는 어빙 덕분에 골치를 썩이지 않고 다른 프로젝트에 전념할 수 있었다.

트럼프는 과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빌 게이츠는 뛰어난 경영자이지만 브랜드 수는 부족해.” 트럼프가 운영하는 부동산과 프로젝트에 전부 ‘트럼프’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일각에선 졸부 근성이라며 눈살을 찌푸리지만 한때 글로벌 금융위기로 휘청거렸다가 부활한 트럼프로서는 감회가 남다른가보다.

그런 그가 이번엔 백악관 입주를 꿈꾸며 일부 유권자를 초조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성장 과정과 그가 일군 트럼프 왕국을 보면 트럼프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문제는 그의 ‘아메리카 퍼스트’ 논리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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