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 경영권 목맨 오너·몸 사리는 관료…‘골든타임’ 나몰라라

입력 2016-03-16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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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들 벼랑끝 서야 채권단에 ‘SOS’…‘변양호 신드롬’ 관료 보신주의도 한몫

기업 구조조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상시적ㆍ선제적 진행이다. 정부와 재계, 금융권, 학계마저 이에 공감하지만 일체감 있는 기업 구조조정은 요원하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구조조정 관련 제도는 잘 갖춰져 있으나 운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가장 큰 원인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부와 업계에 뿌리 박힌 ‘오너십’이 지목된다.

따라서 기업 오너가 사전적ㆍ선제적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 있도록 패널티 부여 등 외부적인 압박이 필요하고, 정부 역시 구조조정의 주체로써 책임의식을 갖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비전도 달리할 필요가 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구조조정의 원인이 IMF 외환위기 때엔 유동성이었지만 지금은 산업, 글로벌 경쟁력 등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과거와 다른 새로운 구조조정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구조조정 지연 1차 원인은 오너”= 업계와 학계에서는 기업 구조조정을 방해하는 1차적인 원인으로 오너의 의지라고 입을 모은다.

구조조정은 타이밍이 중요한데, 오너의 판단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한국의 오너들이 2ㆍ3세 승계 등을 이유로 경영권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구조조정이 더 어렵다는 시각이 있다. 경영권을 잃을까봐 ‘주주 손실 분담’ 원칙을 따라 감자, 사재출연 등에 저항이 큰 편이라는 것.

KDB산업은행 관계자는 “채권단에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 요청 타이밍은 일시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할 때가 가장 좋다”며 “문제는 버티고 버티다 회사가 손 쓸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 되고서야 채권단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대표적인 사례로 현대그룹과 동양을 꼽는다. 두 그룹 모두 자구 계획을 고집하면서 자율협약을 맺지 않으려 하다 유동성 위기를 자초했다.

현대그룹은 지난 2002년 자동차 수송사업부 매각 등 구조조정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났으나 10여년 만에 벼랑 끝으로 몰리며 ‘현대상선의 용선료 협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난 10년 동안 해운업계 위기 해결을 위해 그룹 자체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선박 포트폴리오 재구성, 경쟁력 심화에 따른 대응 방안 등을 철저하게 마련했어야했는데 이를 간과했다는 것이다.

한국금융연구원 김영욱 자문위원은 “우리나라 오너들은 위기가 턱밑까지 차 올라도 조금 더 지원해주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고 나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며 “구조조정 시기를 놓친 오너에게 불이익을 주는 등 패널티를 부여하는 방안을 고려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정부, 변양호 신드롬 벗어나야 = 구조조정 청사진을 마련하고 실행을 주도하는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는 지적이다. 인수합병(M&A) 업계에서는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에 미온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직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는 “정부가 구조조정 책임을 안 지려 하는 것은 ‘변양호 신드롬’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 협의체, 서별관 회의 등을 통해 구조조정 실무자들이 정부가 구조조정을 지원한다는 신호를 읽는 것인데, 책임소재 등에 있어 신뢰가 약하기 때문에 몸을 사릴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양호 신드롬이란 2003년 외환은행 매각 실무 책임자였던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헐값 매각’ 협의로 기소되자 공무원들 사이에서 논쟁적인 사안이나 책임질만한 결정을 회피하는 현상이 팽배해진 것을 이르는 말이다.

당시 외국계 투기 자본에 국내 은행을 팔았다는 지적이 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는 당시 구조조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 관계자가 책임을 지고 구조조정을 성사시켰다고 평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구조조정에 소극적인 이유로 일자리 창출에 대한 강박, 살아날 가능성이 적은 기간 산업에 대한 미련 등 정치적인 이해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 있는 지역의 표심을 고려해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영욱 자문위원은 “김영삼 정부는 구조조정을 미루다가 외환위기를 맞았고, 노무현 정부는 건설사 부채를 이월했고, 이명박 정부는 부실과 부채를 더 키워 박근혜 정부로 넘겼다”며 “금융권에서 2009년 부실징후기업 17개 그룹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수립했으나 정부가 반려했고, 이번 정부는 총선이 끝나면 구조조정을 시작할 듯하다”고 꼬집었다.

◇새 구조조정 로드맵 필요… 기재부가 지휘해야= 이처럼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것도 문제지만 더욱 시급한 것은 새로운 구조조정 로드맵이다.

대기업의 구조조정 수요는 경쟁력 저하 등 구조적 문제이므로 산업 재편의 과제로 접근해야 한다. 이는 기업만의 문제도, 재무구조 개선의 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국민 경제의 발전 방향과 산업적 측면을 함께 고려하면서 정부가 산업구조 구축 방향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거 구조조정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빚을 덜어주고 신규 자금을 지원해주는 재무적 구조조정으로 해결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며 “국내 기간산업의 산업 경쟁력, 중국 제조 업체의 부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새로운 구조조정 로드맵이 필요한 시기”라고 진단했다.

M&A업계 관계자도 “산업은행이 대기업 구조조정 실무를 직접 담당하고 주도하지만 한계가 있다”며 “구조조정 관련 최종 결정권자인 정부, 특히 기획재정부가 새로운 로드맵을 그리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기업을 다 살리겠다는 정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김 자문위원은 “산업 전략이 있었다면 STX조선, 성동조선, SPP조선 등에 수조원을 지원했을까”하고 반문하며 “2009년 해운업 구조조정의 실패사례를 반추하면 정부가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구조조정 기본 원칙에 충실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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