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응팔’의 그때, 아름다운 시절?

입력 2016-01-25 11:16 수정 2016-01-2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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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산업2부장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갖가지 혁명적 기록을 남기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특히 마지막 20회의 시청률은 19.6%로 2010년 Mnet ‘슈퍼스타K 2’의 최종회가 세운 기록(18.1%)을 훌쩍 뛰어넘었다.

응팔의 수익도 가히 혁명적이다. 응팔은 20회까지 광고를 완판하면서 171억원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매출을 올렸다. ‘응답하라 1994’ 때만 해도 당시 ‘꽃보다 할배’와 합쳐 월 매출 100억원대 기록을 세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2년 만에 응팔만으로 월 매출 200억원을 바라보게 됐다.

VOD 서비스 매출 성적도 대단했다. 회당 5억원, 10주 통틀어 50억원 매출을 올렸다. 회당 2억5000만원이었던 응사의 딱 2배.

응팔의 위력은 1993년 생산이 중단된 크라운맥주를 22년 만에 훅 되살려낼 정도로 대단했다. 쌍문동 아줌마 3인방이 평상에 모여 앉아 시원하게 들이켜던 그 맥주가 재출시된 것이다. 이 밖에도 수많은 장수 제품들을 1980년대 냄새 물씬한 콘셉트로 출시해 어른들의 향수와 아이들의 호기심을 팍팍 자극했다.

출연자들을 활용한 광고도 이어졌다. 가나초콜릿은 응팔 여주인공 덕선 역의 혜리를 모델로 발탁, 당시 광고를 그대로 재현해 효과를 톡톡히 봤다.

응팔이 이토록 전대미문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대성공을 거둔 이유는 뭘까. 그것은 향수의 긍정적 부분에 능히 천착했기 때문이다. 향수란 감정엔 원래 그 시절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부정적 측면과 아련한 행복감이 같이 녹아 있지만, 응팔은 부정적인 부분은 짐짓 깨부수고 아름답고 행복한 추억만 파고들었다는 얘기. 이런 측면에서 응팔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일부 행복을 100% 행복에 등치시켰기 때문이다.

필자가 이런 얘기를 목에 잔뜩 힘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필자가 그 시절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쌍문동과 도긴개긴인 도봉동에서.

그 시절 필자가 살던 세상은 행복하곤 거리가 있었다. 되레 생존이란 단어와 더 가까웠다.

당시 필자는 경찰 기자로서 도봉경찰서에 출입했다. 길지 않은 몇 개월의 도봉서 출입기자 생활 동안 허구한 날 접한 건 바로 변사. 그런데 변사의 태반은 노숙자가 길에서 외롭게 죽은 사건이었다. 요즘 같은 사회적 안전망이 없어 사회에서 탈락하면 거리로 나가고 거리에 나가면 죽음이란 얘기였다. 최근 노인이 집에서 홀로 죽는 고독사 문제가 대단한 사회적 이슈가 돼 있는데, 필자는 이를 보면서 시대적 괴리감을 느낀다. 그 시절엔 작은 방 한 칸 없어 거리에서 죽은 것이고 지금은 그나마 방 한 칸은 있어 집에서 죽는 것이다. 요즘 고독사하는 분들과 가족들의 아픔을 깎아내리려는 건 아니고 그냥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는 뜻에서 한 얘기니 독자들께선 오해 없길.

응팔을 보면 데모질하다 경찰에 툭 붙잡혀 부모 맘 고생시키던 보라(류혜영 분)가 사시를 봐서 검사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당시 데모하다 잡힌 사람은 사시에 합격해도 판사나 검사는 절대 될 수 없었다. 변호사는 몰라도. 민선정부라고 요란 떠는 노태우 대통령 집권기지만, 그는 내면 깊은 곳까지 군인이어서 정권의 행태도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절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원희룡 제주도지사처럼 학생운동 하다가 검사된 경우도 있지만, 그건 오롯이 정권이 ‘나 달라졌어요’라고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홍보 이벤트에 불과했다.

응팔 시리즈 초반 인터뷰 장면에서 나이 든 덕선(이미연 분)이 연탄가스 먹어 기억력이 나빠졌다는 얘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필자의 시선을 강타한 건 덕선의 웃음기 가득한 표정. 당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연탄가스로 매일매일 죽어갔는지 회피하고 이 문제를 희화화해버린 것.

응팔을 볼라치면 거의 매번 술판에 화투판이 나온다. 당시엔 가난했지만, 화기애애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80년대 나도 그랬지만 대부분 사람은 야근에 일요 근무로 이웃 얼굴 보기도 힘든 세상이었다.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드라마는 픽션이다. 당연히 미화와 과장투성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당수 시청자는 이걸 사실로 받아들인다. 이런 점에서 드라마를 냉철하게 분별해내는 시청자의 판단력이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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