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貨殖具案(화식구안)] 물가 조절, 국가 개입은 옳은가

입력 2015-06-12 10:50 수정 2015-06-28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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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형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세상의 물건 가격은 등락을 거듭한다. 또한 동일한 물품에 대해서도 지역별로 심한 가격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고대사회는 어떠하였을까? 당연히 지역별 물가의 불균형도 훨씬 심했을 것이다.

고대 중국 사회에는 균수법(均輸法)과 평준법(平準法)이 있었다고 ‘사기(史記)’에 기록돼 있다. 사기의 편제 중 ‘서(書)’의 마지막 편에 ‘평준서(平準書)’란 기록이 있는데, 이 평준서는 독특하게도 한(漢)나라가 세워지고 나서부터 무제(武帝)에 이르기까지 100여 년 동안 국가의 재정과 경제정책의 변동, 그 성공과 실패에 대해 논한 글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상양홍(桑羊弘)이란 관리에 의해 균수법과 평준법이란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균수법이란 가격이 싼 지방에서 상품을 구입하여 비싼 지방으로 운송해 제값을 받게 하는, 지역 간 물가를 고르게 하자는 제도였다. 평준법이란 물건 가격이 폭락할 때 사뒀다가 비쌀 때 팔거나, 수확기에 사 저장하였다가 가격이 오르면 팔아, 한 해의 물가를 조절하자는 취지의 제도였다.

그러면 오늘날 관점에서 이를 바라보면 어떻게 평가하여야 할까? 평준균수법(平準均輸法)을 냉정히 평가해 보자면, 우선 표면적으로는 많이 생산되어 값이 싼 산물을 국가가 매입하여 가격의 폭락을 막고, 그 물자를 다른 지방에 운송하여 판매해 물자 유통을 원활히 함으로써 물가를 안정시켜 서민의 생활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가가 상인의 역할을 대신함으로써 중간 유통 마진을 얻어, 부족한 재정을 보충하기 위해 실시된 것이었다. 때문에 중간 유통 마진을 빼앗기게 된 상인들은 크게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국가가 유통을 독점해서 물건 값이 오히려 비싸지니 일반 백성들도 불만을 갖긴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사마천도 이 제도가 실패한 것으로 평가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다음과 같다. 즉, 물가의 등락 내지는 지역별 물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개입한 결과, 정부의 수입은 크게 늘었지만 가격은 더욱 비싸졌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정부가 물가를 관리하기 위해 직접 유통업에 뛰어들면 정부가 사업을 독점하게 되고, 그러면 독점에 따른 비효율성이 발생하여, 종전보다 소비자 가격이 더 올라가 버리는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정부의 물가대책으로 직접적 시장 개입은 장기적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가장 좋은 물가 대책은 유통망을 개선하는 등 시장 참여자들을 늘려서 시장의 깊이(Depth)를 깊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개입은 오늘날 ‘단통법’ 등의 예에서 보듯 끊이지 않는다. ‘단통법’이란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을 줄인 말이다. 이 법률은 기본적으로 보조금 등으로 인해 가맹점 간 단말기 가격이 심한 차이를 보이므로, 이용자 간 구매하는 가격이 심한 차이가 나는 불합리성을 개선하고자 하는 좋은 의도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한번 자문해 보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소비하는 수많은 상품들의 가격은 모두 동일한가? 점심 후 커피 한 잔의 가격도 천차만별이며, 심지어 길을 마주보고 있는 주유소의 가격도 다 다르다. 그러나 이런 가격 차이가 있음으로 인해 거래가 일어나는 것이며, 이런 가격 차이를 이용해서 돈을 벌고자 하는 새로운 사업자들도 출현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굳이 더 비싼 상품을 구입할 때는 그 소비자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어느 가맹점에 더 값싼 상품이 있나 찾아다니는 시간이 더 소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없이 많은 카드 포인트제도의 경우 시간이 아까운 고액 연봉자들은 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반면 시간이 많은 젊은 대학생들은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법령 하나로 가격 차별을 없애고자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수천년 전 중국 대륙의 모든 물가를 똑같이 만들어 버리겠다는 ‘균수법’이나 ‘평준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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