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부동산 디벨로퍼의 꿈

입력 2006-10-12 14:23 수정 2006-10-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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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본 부동산 상품 개발 한계...피앤디 뚝섬 사태 디벨로퍼시대 종말 예고

"땅 계약금 10%만 가지고 있으면 대박이 가능합니다"

지난 90년대 후반 부동산시장에 '대박신화'를 꿈꾸며 화려하게 등장한 부동산 디벨로퍼(Developer;부동산시행사)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다.

지난 9월29일 뚝섬상업용지 4구역을 매입한 시행사 PND홀딩스가 결국 잔금을 납부하지 못해 재매각절차에 들어가게 된 것이 그 계기가 된 셈이다.

◆저자본 사업 가능한 주거용 오피스텔이 디벨로퍼들의 상품

디벨로퍼 시대를 연 것은 지난 1984년 설립된 신영의 정춘보 사장 부터다. 소규모 빌라 사업에 종사하던 정사장은 97년 분당신도시에 시그마 오피스텔 1094실을 분양해 성공을 거두면서 부동산 상품 개발 판매를 통한 대박을 꿈꾸는 디벨로퍼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디벨로퍼가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IMF 당시의 사회상과 직결된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삼익건설을 비롯해, 우성, 한신, 청구, 우방, 대우, 쌍용 등 대형 건설사가 잇따라 무너지거나 워크아웃 상태에 들어가면서 쏟아져 나온 임직원들이 자기 사업으로 하기에 적절한 것이 바로 디벨로퍼였다.

특히 IMF 외환 위기 당시 건설시장 붕괴에 따라 2000년 부터 주택 부족 현상이 현실화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주거용 오피스텔을 잔뜩 공급할 수 있었던 것도 디벨로퍼가 활동할 수 있는 양분이었던 셈이다.

오피스텔은 법 규정 상 상업시설에 들어가는 만큼 아파트 등 토지를 100% 매입한 후 승인을 받아야할 필요가 없다. 이에 따라 토지가격의 10%에 해당하는 계약금만 갖고 있으면 분양을 할 수 있어 자금사정이 넉넉지 않은 디벨로퍼들이 적은 돈으로 대박을 바라보기에 충분했었다.

심지어 계약금 10%도 투자자를 유치하면 되는 만큼 '좋은 땅'의 번지수만 알고 있어도 시행사를 창업하는 경우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자고나면 늘어나는 게 디벨로퍼였다.

무수한 디벨로퍼 중 성공 반열에 오른 디벨로퍼로는 신영 정춘보사장 외에 김한옥(現 사장)전 사장이 이끈 '도시와사람', 장용성사장의 '솔렉스', 호텔식 레지던스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김영만사장의 '코업', 이강오사장의 '참좋은건설', 김완식사장의 '더랜드', 그리고 김병석 사장의 '더피앤디'등을 꼽을 수 있다.

◆공급과잉에 시행사 몰락 '추풍낙엽'

하지만 이같은 디벨로퍼 전성시대는 3년이상 지속되지 못했다.

2003년부터 꺼지기 시작한 오피스텔 거품 붕괴는 이들 디벨로퍼들의 몰락을 알리는 서곡이 됐다.

주거용 오피스텔은 복층 구조가 금지된 이후 대량 미분양 사태를 면치 못했고, 2004년 6월부터는 주거용 오피스텔 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해 지면서 디벨로퍼들은 더이상 저자본에 의존한 사업을 할 수도 없게 됐다.

실제로 우후죽순 생겨난 디벨로퍼들이 공급한 물량은 대부분 '버블' 혐의를 벗기 어려운 오피스텔이나 상가 등 수요층이 얇아 공급은 쉽고, 분양은 어려운 상품들이다.

이에 따라 이들 디벨로퍼들이 공급한 물량은 초기와 달리 수요자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서서히 시장의 관심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우선 자타가 공인하는 업계 2위 김한옥 사장의 도시와사람은 초소형 오피스텔 'MOS'와 오피스텔 '미켈란'시리즈를 분양했지만 이같은 상품에 실증을 낸 수요자들의 외면으로 잊혀져갔다. 뒤늦게 사업 방식을 바꾼 도시와사람은 초대형 아파트인 '오데움'을 분양했지만 이 역시 턱없이 높은 분양가로 인해 시장의 '버림'을 받았다.

이에 따라 한때 디벨로퍼를 동경하는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김한옥 사장은 도시와사람 의 모기업인 대교그룹의 신뢰를 잃어 사장직에서 물러나 현재는 '도시미학'이란 시행사로 실버타운 분양에 나서는 등 과거에 비해 크게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른 업체들은 모두 사업을 중단한 상태. 아니 중단했다기보다는 도저히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이 없다는 표현이 옳을 정도다.

디벨로퍼 중 가장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인 이강오사장은 2001년 '참좋은 건설'을 설립한 후 2003년까지 고급형 오피스텔 '레몬'시리즈를 잇따라 공급하면서 공격적인 경영을 시도했지만 2004년부터는 극심한 사업난에 시달리며 울산에 400세대 규모 아파트단지를 공급한데 머물고 있는 상태. 하지만 이 역시 분양저조에 빠져 있다.

그나마 이들 업체는 사업을 추진하며 회사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솔렉스, 코업, 더랜드 등은 모두 개점휴업에 들어간 상황이다. 솔렉스는 사실상 분양대행으로 업종을 변경했으며, 임대사업자에 대해 확정수익률을 제시해 화제에 올랐던 코업은 기존 레지던스 사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태다.

단지 분당 시그마 오피스텔을 분양해 약 2000억원의 수익을 거둬 일찌감치 아파트로 사업성격을 전환한 신영만이 겨우 과거의 명성을 잇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004년 4월 부천 중동신도시에 단일 주상복합 단지로서는 가장 대단지인 1965세대(아파트 225세대) 위브더스테이트를 분양해 업계에 자리매김했던 피앤디 홀딩스가 겪고 있는 현실도 이에 다르지 않다. 피앤디 홀딩스는 4444억원 규모의 뚝섬상업용지 4구역을 매입해 위브더스테이트 분양 이후 최대 실적을 기대했지만 결국 중도금과 잔금 지급보증을 서줄 시공사를 선정하지 못해 재매각에 들어갈 상황에 놓인 것이다.

뚝섬상업용지 4구역은 절반가량이 숙박시설 용지라 호텔 건립이 불가피한 곳. 주상복합의 경우 고가의 분양이 가능하지만 호텔의 경우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한 건설업체들은 사업 수지를 맞추기 위해 분양가를 높였다가 자칫 '고가분양'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부담감에 뚝섬4구역을 외면한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뚝섬4구역을 안고 승천하고자 했던 피앤디홀딩스는 오히려 추락하게 된 상태에 놓인 것이다.

한 시공업체 관계자는 "디벨로퍼시대 숫자는 결국 부동산 버블과 직결한다고 할 수 있다"며 "부동산 시장에 낀 버블이 걷히는 과정에서 디벨로퍼들의 몰락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최근 벌어지는 고분양가 논란의 뒷면에 시행사가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 시행사의 개발사업에 따라 '중간 유통과정'이 한번 더 생기는 만큼 시행사의 난립은 결국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따라 후분양제나 정부주도의 공영개발이 확대되면 이들 시행사들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디벨로퍼들은 지난해 디벨로퍼들의 연합체인 '한국디벨로퍼협회'(회장 정춘보)를 출범시켰지만 '디벨로퍼시대'가 황혼에 접어들고 있는 현재 별다른 묘책은 꺼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디벨로퍼 창업은 여전히 줄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 한두 건으로 대박을 노릴 수 있기 때문. 한 소규모 시행사를 운영하는 디벨로퍼는 "부동산 개발은 운만 좋으면 근린 상가와 같은 소규모 상가만 해도 최소 10억원 단위의 수익이 가능하다" 며 "한 두 건 사업을 통해 대형 업체로 올라설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는 만큼 디벨로퍼 창업은 앞으로도 여전히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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