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풀 원작 영화의 최대 단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원작의 완벽한 완성도다. 이미 원작이 너무도 영화적인 요소를 넘치게 갖춘 완성품이기에 일반 장르적 기성품의 느낌과는 관객들이 느끼는 체감 자체가 다르다. 특히 너무도 불편한 진실을 너무도 편하게 풀어가는 화법의 기능적 면은 원작의 세공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논하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다. 다시 말해 강풀 작품의 영화화 시도는 잘해도 본전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망신 수준에 머물기도 힘들 정도다.
이 같은 원작의 역설적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두 가지 선택권이 영화에 주어진다. 원작의 주제를 살린 전혀 다른 스토리의 해석, 또는 원작의 포인트를 그대로 살리는 실사화다. 전자는 원작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토리를 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반면 원작 팬들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후자의 경우는 원작 팬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 하지만 기시감 차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 원작을 처음 접할 당시의 느낀 충격파가 떨어지는 단점도 있다.
원작은 각 캐릭터들의 작은 스토리가 하나의 큰 줄기로 묶이면서 결말을 끌어낸다. ‘이웃사람’은 새엄마 경희(김윤진)와 여선(김새론)의 관계, 여선과 수연(김새론)의 연관성, 여선과 수연 그리고 승혁(김성균)의 감정선, 혁모(마동석)와 승혁의 얽힘, 여기에 종록(천호진)이 바라보는 사건의 밑그림이 거미줄처럼 설 킨 상당히 복잡한 구조다.
아쉬운 점은 원작과 다른 영화의 변형된 결말부다. 큰 맥을 따라가던 여러 줄기의 작은 결말이 중심 결말을 만나기 전 큰 둑에 막히듯 ‘뚝’하고 멈춘다. ‘이웃사람’은 모든 캐릭터가 원죄 의식에 사로잡힌 다소 감정적 노출이 심한 영화다. 하지만 영화는 원작 기준에서 전체 스토리 관찰자인 종록의 얘기를 생략해 버렸다. ‘단절과 소통의 위험성’을 얘기한 ‘이웃사람’이 스토리의 방점을 찍기 위해선 종록 에피소드가 어떤 식으로든 끝을 맺었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웃사람’은 시각적으로 감정의 결이 두드러진 영화다. 풍부한 해석의 관점을 지닌 캐릭터들을 연기한 배우들의 공이 크다. 아쉬운 주제 의식의 마무리를 씻어낸 캐스팅의 싱크로율이 관객들의 시각적 만족도를 채웠다. 원작자인 강풀의 깜짝 카메오는 마지막 느슨해진 관객들의 허점을 찌르는 '이웃사람'들의 보너스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