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후 해제 84%가 기존 계약⋯잔금조달 부담

은행권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본격화하면서 서울 아파트 매매계약 해제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한도 축소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인 9억원 초과~15억원 이하 아파트에서 계약 파기가 속출하는 상황이다.
17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계약 해제 건수는 총 241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6월(195건) 대비 46건(23.6%) 늘어난 수치다.
특히 9억원 초과~15억원 이하 아파트의 계약 해제는 6월 54건에서 7월 89건으로 한 달 만에 35건(64.8%) 급증했다. 이는 7월 서울 아파트 전체 계약 해제 증가분(46건)의 76.1%에 달하는 수치다. 반면 다른 가격대인 6억원 이하 아파트는 12.5%, 6억원 초과~9억원 이하 아파트는 5.5% 늘어나는 데 그쳐 대조를 이뤘다.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는 대출 구조의 급격한 변화가 꼽힌다. KB국민은행은 지난달 10일부터 주택구입 목적 주담대 한도를 최대 6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췄다. 타 시중은행 역시 대출모집인을 통한 신규 접수를 중단하며 총량 조이에 나섰다.
통상 주택담보인정비율(LTV) 40%를 적용할 때 6억원 이하 주택은 대출 가능액(2억4000만원) 자체가 3억원을 밑돌아 한도 축소의 직접적인 타격이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LTV 40% 기준 9억원 주택은 3억6000만원, 12억원은 4억8000만원, 15억원은 6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주담대 한도가 3억원으로 묶이면서 9억원 주택은 최대 6000만원, 12억원은 1억8000만원, 15억원은 최대 3억원의 자금 공백이 발생하게 된다.
실제로 대출 조이기가 시행된 7월 10일 이후부터 31일까지 해제된 9억원 초과~15억원 이하 거래 57건 중 84.2%에 달하는 48건은 7월 10일 이전에 체결된 계약이었다. 대출 규제 이후 해제된 거래 상당수가 규제 시행 전에 체결된 계약이라는 점에서 기존 계약자의 잔금 조달 부담이 계약 해제 증가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주담대 축소에 따른 자금 줄 막힘 현상은 입주를 앞둔 신축 단지로도 번졌다. 2178가구 규모의 대단지인 경기 수원시 '매교역 팰루시드'는 은행권의 총량 관리 여파로 집단 잔금대출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입주 예정자들이 큰 혼란을 겪었다. 난감한 상황이 이어지자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 주재 국민 대토론회에서 이 문제가 직접 제기됐고,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집단대출 공급 방안을 논의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지난 13일 올해 금융권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목표를 기존 1.5%에서 3.0%로 상향 조정하며 공급 여력을 넓혔다. 이에 따라 금융권의 전체 대출 여력은 약 30조원 추가로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은행별 세부 배정 기준과 주택 관련 대출의 별도 관리 방안이 완전히 안착하기 전까지는 기존의 대출 문턱 높이기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번 가계대출 총량 증가분이 청년·실수요자 지원에 집중되고 당국이 신용대출 관리는 여전히 강화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은행권의 기존 대출 규제는 당분간 유지될 분위기다. KB국민은행의 주담대 3억원 제한을 비롯해 하나은행의 비대면 주담대 신규 취급 중단, 우리은행의 지점당 한도 10억원 등의 조치는 물론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규제도 그대로 이어질 전망이다.
심형석 법무법인 조율 수석전문위원(미국 IAU 교수)은 "계약을 맺었더라도 대출 실행은 결국 잔금 시점에 이뤄지는데, 대출이 안 된다고 하면 현장에서는 방법이 없다"며 "정부가 대출 여력을 확대했으나 은행 현장에서는 아직 실질적으로 풀린 것이 없는 상태라 당분간 이러한 현상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