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무슨 일 하는지 모른다”⋯860개 조합 고문의 실체 [신협, 그들만의 왕국 ②]

입력 2026-07-0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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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협은 전국 800여 개 지역조합을 거느린 대표 상호금융기관이다. ‘조합원이 주인’을 표방하지만, 이사장의 장기 재임과 반복되는 금융사고, 내부통제 논란은 신협의 고질병이 된 지 오래다. 본지는 법원 판결문과 전국 신협 조합 전수조사 결과, 제재 공시 등을 분석하고 현직 직원과 전문가들을 심층 취재했다. 고문제도·상임임원 운영 실태를 시작으로 ‘그들만의 왕국’을 떠받쳐 온 신협 지배구조와 내부통제의 구조적 허점을 짚어본다.

전국 860개 조합 첫 전수조사⋯고문 29명·월 최대 300만원 지급
위촉 이유·성과 설명 못하고 역할 불분명⋯“특정인 위한 우회 통로”
신협중앙회도 문제 인정⋯신장식 의원 “고문제도 개선 방안 마련”

“고문은 퇴임한 이사장이 조합에 계속 남아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자리예요. 직원들은 고문이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서울의 한 신용협동조합(신협)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베테랑 직원 김모 씨는 최근 상호금융권 안팎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신협 고문제도의 실체를 이같이 폭로했다. 김 씨는 “고문은 신협법에도 없고 정관에도 없는 유령 직책”이라며 “조합의 발전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오직 특정인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우회 통로로 변질됐다”고 성토했다.

1일 본지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신협 고문제도 운영 실태 전수조사'(올해 5월 기준) 자료에 따르면 고문 위촉 절차와 운영 기준이 명확한 근거 없이 제각각 운영 중이었다. 고문이 수행하는 업무 역시 단순히 ‘자문 및 지도’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기재돼 있었다. 실질적인 업무 기여나 구체적인 역할은 전혀 증명되지 않은 '깜깜이' 상태였다. 전국 860개 신협의 고문 운영 현황과 난맥상이 구체적인 데이터로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 결과 현재 전국 17개 조합에서 이 같은 고문제도가 운영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860개 조합 중 17곳이라는 수치는 표면적으로 적어 보일 수 있지만, 이는 변칙적인 고문제도가 이제 막 태동하는 초기 단계로 향후 유행처럼 확산될 기미가 보인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위촉된 고문은 총 29명으로 조합당 평균 1.7명 꼴이었다. 한 조합이 무려 4명의 고문을 대거 거느린 비정상적인 사례도 적발됐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조합당 월평균 고문료는 약 176만원이었으며, 고문 1인당 지급액은 최소 월 10만원에서 최대 월 300만원까지 극심한 편차를 보였다. 조합 4곳은 고문을 위촉하고도 별도 고문료를 지급하지 않았다.

고문료 지급 여부와 관계없이 드러 구조적 문제는 명확했다. 조사 대상 조합들은 고문의 구체적인 업무 성과나 위촉 근거를 전혀 설명하지 못했다. 신협중앙회도 운영 실태의 문제를 인정했다. 중앙회 관계자는 “고문제도를 운영하는 조합마다 고문을 위촉하는 절차와 운영 기준, 운영 실태가 서로 달라 일치되지 않은 운영 사례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중앙회는 이번 전수조사를 바탕으로 고문 위촉의 타당성을 재검토하는 추가 점검에 착수하고 부작용이 확인되면 세부 지침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현장에서 바라보는 고문제도의 실체는 중앙회의 진단보다 훨씬 직설적이었다. 22년 차 수도권 신협 직원 윤모 씨는 “이사장이 자기 사람들로 이사회를 꾸린 뒤 만장일치로 고문직을 만든다”며 “임기가 끝나면 고문으로 자리를 옮겨 사실상 이사장 역할을 이어간다. 고문은 퇴임이 아니라 자리만 바뀌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꼼수 연임' 기법이 조합 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15년째 근무 중인 강모 씨는 “지역 이사장들이 평의회 등에서 ‘저 조합도 문제없으니 우리도 도입하자’며 사례를 공유하고 벤치마킹한다”며 “심지어 직원들에게 ‘내가 다시 이사장으로 못 돌아올 것 같냐’며 공공연히 협박성 발언을 일삼는 이사장도 있다. 법으로 옥죄지 않는 한 변칙 고문직은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현장의 기류를 전했다.

현재 신협의 고문제도는 법률상 근거가 전무한 데다 위촉 기준, 보수, 임기를 규율할 통일된 표준 규정이 없다. 조합별 이사회가 필요에 따라 고무줄식으로 만들고 부수면 그만인 구조다. 제도 운영의 투명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근본적 배경이다.

신 의원은 “연임 제한 제도가 존재함에도 일부 조합에서 고문제도가 사실상 장기집권을 위한 우회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역할과 책임이 불분명한 고문직이 연임 제한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향후 고문 위촉 사유와 업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보수 지급 기준과 공시를 의무화하는 등 고문제도 전반에 대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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