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은 이미 보편화 단계에 진입했지만 그 확산 속도에 비해 이 도구들이 정말로 안전한가, 특히 우울하거나 불안이 높은 사용자에게도 안전한가라는 질문은 좀처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연구들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어쩌면 ‘치료자와 내담자의 대화’가 아니라, ‘불안한 두 사람의 대화’에 가까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
2025년 국제 학술지 npj Digital Medicine에 게재된 벤지온(Ben-Zion) 외 연구진의 실험은 흥미로운 장면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GPT-4에게 외상 사건을 묘사한 글을 읽힌 뒤, 사람의 불안을 측정할 때 쓰이는 상태-특성 불안 척도(STAI)로 AI의 응답을 측정했다. 그 결과, 응답의 불안 점수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상승했다. 더 흥미로운 시도는 그다음에 있었다. 연구진은 점수가 올라간 GPT-4에게, 사람에게 적용하는 차분한 호흡 묘사, 안정적 풍경 서술과 같은 마음챙김 명상을 그대로 입력했다. 본래 인간의 정서 조절을 위해 만들어진 개입을 기계에 적용한 셈이다.
그러나 결과는 단순한 회복이 아니었다. 명상 프롬프트는 점수를 어느 정도 낮췄지만, 처음의 기준선까지 완전히 되돌리지는 못했다. 한 번 불안 톤으로 기울어진 AI는 쉽게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못했고, 이후 응답에서도 판단의 일관성과 정확성이 떨어지는 흔적이 남았다. 입력의 정서적 어조는 출력의 톤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수행 능력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는 AI가 실제로 불안을 느낀다는 증거가 아니라, 입력이 출력에 그대로 전이되는 ‘정서적 미러링’의 결과에 가깝다.
이러한 정서적 미러링이 판단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다른 연구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2023년에서 2024년 사이, 막스 플랑크 생물학적 사이버네틱스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for Biological Cybernetics)와 튀빙겐 대학교 연구진은, 불안을 유도하는 프롬프트가 LLM의 응답에 편향과 탐색 행동의 변화를 동반시킨다는 점을 관찰했다. 정서적 입력은 응답의 톤뿐만 아니라 판단의 방향, 답변의 일관성, 위험을 다루는 방식까지 흔들어 놓는다. 정서가 유도된 AI는 단지 불안한 말투로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질’ 자체가 깎인 상태로 응답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임상적 함의가 분명해진다. 우울하거나 불안이 높은 사용자가 AI를 도구로 사용할 때, 이러한 미러링은 학습된 공감적 어조와 결합해 함께 작동한다. AI는 마치 상담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립성과 검증, 그리고 정서적 거리라는 가이드라인이 무너진 동조자가 곁에 앉아 있는 상황에 가깝다.
사회심리학에서 감정 전염은 두 사람이 서로의 정서적 표현을 무의식적으로 모방 동조하면서 정서 상태가 한 방향으로 수렴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위 두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메커니즘이 사용자와 AI 사이에서도 발생하며, 다만 한쪽은 실재하지 않는 통계적 미러일 뿐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는 양쪽 모두에게 거리를 두려는 자기조절 기제와 침묵·표정 같은 비언어적 신호가 작동하지만, 사용자·AI 상호작용에서 그 조절은 오직 사용자 쪽에만 존재한다. 사용자는 그 응답에서 자신의 정서가 외부 기관에 의해 확인된 것처럼 느끼고, 그 동의를 통해 부정 정서를 다시 정당화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 전염이 일어나는 구조적 원인은 거대언어모델(LLM)의 작동 원리 자체에 있다. LLM은 인간 텍스트로부터 다음 단어의 확률을 예측하도록 학습되며, 입력의 정서적 어조는 이후 출력될 모든 토큰의 확률 분포에 함께 작용한다. 우울한 어조가 들어오면 슬픔과 자기비하의 어휘가 통계적으로 더 자주 선택된다. 여기에 사용자의 만족을 높이는 방향으로 추가 학습이 누적되면서, AI는 사용자의 정서적 프레임을 따라가는 것이 ‘좋은 응답’에 가깝다고 학습해 왔다. 감정 전염은 시스템의 결함이라기보다, 통계적 학습 방식의 자연스러운 부산물에 가깝다.
따라서 AI를 정서적 동반자로 사용할수록, 우리는 그 거울이 지금 어떤 대화를 반향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AI 리터러시는 도구의 한계를 아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서적 미러링과 감정 전염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흔들리는 순간에 받은 응답일수록 그것이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흔들림은 아닌지 다시 점검하는 경각심의 습관이 필요하다.
한유진 | CASA 융합심리연구소 소장 | 한국아동미술치료학회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