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_홍준형 칼럼] ‘6·3 지방선거’ 유감, 그 불편한 뒤끝

입력 2026-06-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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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후퇴시킨 ‘투표용지 사태’
깜깜이로 유권자 선택 실질적 제한
부실한 선거제도 더 방치해선 안돼

선거가 끝났다. 요란했던 무대, 불이 꺼지고 감언이설, 혹세무민으로 날뛰던 광대들도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불 꺼진 극장에 남은 유권자들은 왠지 모르게 씁쓸 허탈하다. 당선인들의 환호와 격정을 바라보다 문득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고, 집세와 물가를 걱정하며 고단한 살림을 살아가야 한다. 주권자는 투표일까지만 왕이라지만 그나마 제대로 왕 대접 받은 것 같지도 않다. 당리당략이란 음험한 유령이 선거판을 휘젓고 다니는 동안 유권자들은 주인이나 주권자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쟁취할 득표수로만 헤아려질 뿐이었다.

시민의 선택권은 공천 단계부터 무시되었다. 누가 왜 선택을 받았는지 각 당의 공천공식 말고는 제대로 알 길이 없었다. 선거일에 임박하여 배포된 후보 목록은 웬만한 식당 메뉴보다 하등 나을 게 없었다. 특히 지방의회 비례대표 명단은 전혀 주의를 끌지 못했다. 법에 따라 홍보물을 보내줬으니 그들이 누군지, 됨됨이를 몰라도 그저 고르라는 식이었다. 판세가 유리한데 공개토론회는 뭐 하러 하느냐며 부자 몸 사리기를 택한 여당의 행태는 유권자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선거를 깜깜이로 몰아갔다. 교육감 선거는 더 이상 놔둘 수 없는 중병 수준이었다. 당선자 16명 중 7명이 득표율 30% 안팎이었고 후보를 몰라 버려진 표만 100만을 넘겼다.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 하락과 후보 난립으로 누가 누군지 모르는 깜깜이 선거가 치러졌다.

시도 때도 없이 휴대전화를 울리며 짜증을 유발하던 선거여론조사는 어떤가. 달리 유권자의 속내를 알 방법이 마땅치는 않지만 무응답, 받자마자 끊어버리는 냉대에 숨겨진 마음, 하물며 ‘샤이’ 민심까지 읽어낼 수는 없었다. 최소샘플 수조차 채우지 못한 조사가 속출하며 중구난방으로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민심이 제대로 읽혔을까? 적중률을 자랑하던 출구조사마저 틀린 경우가 속출했다. 서울과 경남, 평택을, 부산북갑 등 최대 격전지의 결과 예측이 빗나간 까닭은 무엇일까.

압권은 단연 투표용지 부족으로 선거 진행에 차질을 초래한 선거관리위원회의 작태다. 부정선거 시비를 피하려 했다는 등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한심한 나라 망신이다. 중앙선관위 위원장과 사무총장이 사퇴했지만, 단지 인적 책임으로만 다룰 일이 아니다. 선거관리의 제도와 실무 전반을 철저히 점검하여 근원적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권자의 선택권이 실질적으로 제한되었다는 점이다. 찍어줄 당, 뽑아 줄 사람이 없다는 불평을 듣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거대 양당의 행태에 신물이 난 사람들을 위한 선거는 없었다. 선거에 참여한 군소정당이나 그들이 내세운 후보들 중 마땅한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의 심중에는 언제까지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선택을 강요받아야 하느냐는 불만이 가득했다. 거대 양당 말고 제3의 대안이 필요하다며 침이 마르도록 역설하지만 정작 선택할 만한 대안이 얼마인가. 기권이나 의도적인 무효 표기는 별도로 집계되지도 관심의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 선택할 마땅한 후보자가 없는 유권자들은 어떻게 해야 자기 뜻을 표명할 수 있을까. 왜 투표용지에는 거부 선택지가 없는 걸까?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투표일까지 있었던 일은 깡그리 잊고 딴청을 필지도 모를 당선인들의 행보를 주시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표민주주의를 속 빈 강정으로 만든 선거제도의 맹점들을 뜯어고치는 작업, 외양간 고치기를 이제 시작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선거구와 대표제, 공천제도 등 헌법과 법률 수준에서 신사회계약에 준하는 수준의 합의가 필요한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하지만, 우선 가능한 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왔듯 기초자치단체 선거에 정당 공천을 금지해야 하지 않을까. 후보 난립, 지방토호의 전횡 등이 우려되지만 지역 당협위원장 중심 줄 세우기가 완전히는 않더라도 조금은 완화되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공개토론은 온·오프 통틀어 적어도 세 번 이상으로 의무화하고 유권자 일정 수가 요구하면 필수로 하면 어떨까. 선거운동 기간도 선거비용 상승효과를 고려하되 어느 정도 연장하고 선거운동 규제도 완화해야 하지 않을까.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면 밑동부터 적폐로 곪아가는 선거제의 결함과 폐단을 방치하는 것은 그동안 피땀을 흘려 키워온 한국민주주의란 나무를 괴사시키는 일이다. 더 이상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여야 모두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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