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닥 시장에서 조(兆) 단위 새내기 무게 중심이 바이오에서 인공지능(AI)으로 옮겨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바이오 기업이 코스닥 대어급 신규 상장의 체급을 끌어올렸다면, 올해는 AI 인프라와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후속 주자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닥 신규 상장사는 스팩을 제외하고 84곳이었다. 상장 기업 수는 전년보다 줄었지만 공모가 기준 시가총액 합계는 15조 3000억원으로 2021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상장 당해 시가총액 1조원을 넘어선 기업도 11곳으로 역대 최다였다.
다만 업종별로는 바이오 쏠림이 뚜렷했다. 이들 11곳 가운데 9곳이 바이오 기업이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2월 상장한 에임드바이오는 상장 후 한때 시가총액 4조원을 넘겼고, 오름테라퓨틱과 알지노믹스도 각각 2~3조원 수준의 시가총액을 기록하며 바이오 중심 대어 구도를 키웠다.
올해 들어서는 AI 기업들의 코스닥 상장 움직임도 가시화되고 있다. 신호탄을 쏜 곳은 AI 인프라·클라우드 기업 엘리스그룹이다. 엘리스그룹은 19일 한국거래소에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했다. 2015년 코딩 교육 사업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현재 AI 이동식 모듈형 데이터센터(PMDC), GPU 클라우드, AI 전환 솔루션 등으로 사업 축을 넓힌 상태다. 지난 4월 투자 유치 과정에서 1조원에 육박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올해 첫 조 단위 코스닥 입성 후보로 거론된다.
후속 후보군도 이어지고 있다. AI 기반 미디어 기술기업 네오사피엔스는 지난달 코스닥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다. 슈퍼브에이아이, 페르소나AI 등도 코스닥 상장 준비 기업으로 거론된다. 지난해 코스닥 신규 상장사 중 AI 기업은 8곳으로 비교적 비중이 적었지만, 올해는 엘리스그룹과 네오사피엔스 등을 중심으로 AI 인프라·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존재감이 커지는 흐름이다.
공모주 시장 자금 흐름도 첨단산업 기업에 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정부는 AI, 반도체, 바이오, 방산 등 첨단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150조 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를 추진하고 있다. 코스닥벤처펀드의 코스닥 공모주 우선배정 비율도 올해부터 25% 이상에서 30% 이상으로 높아졌다. 정책자금과 공모주 배정 구조가 맞물리면서 첨단산업 IPO에 자금이 유입될 여지는 커진 셈이다.
다만 조 단위 몸값이 흥행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코스닥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린 기업들 사이에서도 상장 이후 주가 흐름은 엇갈렸다. 리브스메드는 상장 첫날 공모가를 10% 가까이 밑돌았고, 에임드바이오는 상장 후 시가총액이 한때 4조원을 넘어서는 등 대조적인 흐름을 보였다. 기술력과 성장성만으로 높은 밸류에이션을 설명하기 어려워진 만큼 매출 가시성, 수익모델, 오버행 부담도 함께 검증대에 오르고 있다.
심사 환경도 변수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말 AI, 에너지, 우주 산업에 대해 업종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질적심사 기준을 도입했다. 혁신기업 상장을 지원하는 취지지만, AI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력뿐 아니라 사업화 가능성과 매출 전환 능력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과제도 커졌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코스닥 조 단위 새내기 중심이 바이오였다면, 앞으로는 AI 인프라와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바이오 중심의 대어 구도를 얼마나 이어갈지가 관심"이라며 "시장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성장성보다 실적 가시성과 밸류에이션 설득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