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서 피어난 환대… 윤석철 작가의 '등대섬' [신간]

입력 2026-03-3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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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장편소설 '등대섬' 표지. (사진제공=나남출판)
▲대하장편소설 '등대섬' 표지. (사진제공=나남출판)
대하장편소설 '소설 예수'를 통해 인간 예수의 삶을 조명하며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질문했던 윤석철 작가가 신작 '등대섬'으로 돌아왔다.

신간 '등대섬'은 도망치듯 섬을 떠났던 목사 현우가 남쪽 바다 끝 등대섬으로 다시 돌아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배를 타고 겨우 닿는 이 섬은 죄인조차 품어주었다는 고대의 성역 '소도(蘇塗)'와 닮아 있다. 세상의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이 마지막으로 흘러든 이 작은 섬에서, 사람들은 구태여 사연을 캐묻지 않고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책은 단순히 공동체의 이야기를 넘어 종교와 신앙의 참된 의미를 묻는다. 거룩한 교리보다 삶으로 서로를 지탱하는 섬사람들 앞에서 목사 현우는 자신이 붙들어 온 믿음과 현실의 삶 사이의 간극을 마주하게 된다. 삶의 밑바닥을 지나온 사람들 앞에서 신앙의 언어가 자주 힘을 잃는 것을 체감한 그는, 기독교라는 제도 종교의 울타리 밖에서도 혹은 그것이 사라진 이후에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끊임없이 묻는다.

또한 소설은 섬사람들이 품고 살아온 기억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조용히 비춘다. 전쟁 속에서 남편과 시아버지를 잃은 황씨 할머니의 긴 침묵과, 광주의 어느 날 이후 한쪽 다리를 잃고 절뚝거리며 살아온 '그집 김씨'의 사연이 등장한다. 이들은 상처에 짓눌려 살기보다 고통을 조그만 항아리에 담아 다스리듯 살아왔고, 이러한 이야기들은 섬의 시간 속에 쌓여 거대한 공동체의 기억으로 이어진다.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등대는 이러한 세계를 비추는 상징이다. 누군가를 이곳으로 부르는 신호가 아니라, 각자가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불빛에 가깝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조용히 비추는 등대처럼, 책은 한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비워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순환의 시간을 따라가며 우리 시대에 사랑과 환대는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지 되묻는다.

저자 윤석철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전 태어나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사회과학적 사유에 눈뜬 이후 '더불어 살아가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해온 그의 철학이 이번 작품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나남출판. 324쪽. 1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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