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정보 산업 주도권 잠식 우려
한국 기업은 안보데이터 '하청' 전락

정부가 구글의 지도 데이터 반출 허가 조건으로 내세운 ‘국내 영상 라이선스 활용’ 방식을 두고 공간정보 산업의 주도권 잠식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국내 기업과의 협력을 통한 ‘상생 모델’임을 강조하고 있으나 정부의 발언에서부터 알 수 있 듯이 토종 기업들이 글로벌 빅테크의 단순 데이터 공급처로 고착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안보 책임을 국내사에 전가할 수 있는 ‘전략적 무지’ 구조를 틈타 구글이 미래 산업의 핵심 자산만 챙기는 ‘체리피킹’을 벌인다는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4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고정밀 지도 반출 승인 구조의 핵심은 구글 본사가 직접 보안 시설을 가리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리스트를 관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 관계자는 “구글 본사가 보안 시설로 인지하지 못하도록 국내 제휴 기업이 처리한 영상을 라이선스 방식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구글이 막대한 자본과 기술이 들어가는 보안 가공 공정을 생략한 채 한국 정부가 인증한 ‘보안 완제품 데이터’를 쇼핑하듯 골라 담기만 하면 된다는 점이다. 우리 기업들은 정부 지침을 맞추기 위해 고도의 가공 기술과 인력을 투입하지만 그 결과물은 구글 서비스의 질을 높여주는 재료로 쓰일 뿐이다. 결국 구글은 안보 시설 노출 금지라는 명분을 방패 삼아 책임은 외주화하고 수익성이 높은 고정밀 데이터만 취할 수 있는 구조다.
특히 이번에 반출되는 데이터는 국토지리정보원이 1966년부터 1조 원 이상의 국고를 투입해 만든 국가 자산이다. 국민 혈세로 닦아놓은 미래 산업의 노다지를 글로벌 공룡에게 사실상 상납하는 ‘굴욕적 상생’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산업 현장의 위기감은 더 구체적이다. 국내 공간정보업계 관계자는 “안보 가이드라인을 이유로 핵심 시설 정보는 국내 기업이 가공하게 하면서, 구글은 정작 자율주행과 AI 에이전트의 핵심인 데이터만 가져가겠다는 것”이라며 “이는 전형적인 체리피킹”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이어 “과거 구글 맵에 안방을 내준 유럽은 자국 모빌리티와 공간정보 생태계가 통째로 종속되며 고사했다”며 “한국은 네이버와 카카오 등 자국 플랫폼이 시장을 수성 중인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국가인데, 정부가 스스로 최후의 보루를 무너뜨려 생태계를 종속시키려 한다”고 우려했다.
정부 내부에서도 이러한 ‘책임의 비대칭성’에 대한 우려가 감지된다. 정부 관계자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보안 사고와 관련해 “구글이 제휴 기업에 갑질하는 등 대기업의 횡포가 우려될 수도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구글에 갑질하지 말라는 걸 승인 조건으로 내세울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실토했다. 이는 안보라는 공무를 수행하는 파트너를 거대 플랫폼의 ‘을’로 방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국 정부가 정책적 성과에 급급해 실질적인 안보 책임 소재와 국내 기업 보호 대책은 뒷전으로 미뤄뒀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상생 권고’와 같은 선언적 의미를 넘어 실효성 있는 사후 관리 체계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는 지도 전담관 제도 등 행정적 장치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구글과 국내사 간의 실질적인 계약 관계를 점검해야 한다”며 “민간끼리의 계약일지라도 정책 목적 달성에 차질이 생긴다면 정부가 개입해 독소 조항을 수정하도록 요구하는 등 승인 유지 조건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