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중간값 500만 원 넘어
노숙 경험 학생 10년 새 두 배 늘어
주택난ㆍ양극화에 공동체 의식도 사라져

세계 금융의 심장이라 불리는 뉴욕에서 들려오는 절규다. 8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뉴욕 공립학교 학생 7명 중 1명, 약 15만4000명이 집이 없는 ‘노숙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때 중산층이 중심이던 도시가 ‘주거 불평등의 상징’으로 전락한 것이다.
“주거는 상품이 아닌 권리”를 외친 진보 정치인 조란 맘다니가 이번 주 선거에서 뉴욕시장에 당선된 배경이다.
뉴욕시의 한 주부는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2년 전 둘째 딸이 태어난 뒤로 부동산 사이트를 검색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고 말했다. 남편, 세 자녀와 함께 다섯 식구가 그가 독신 시절 구입한 1LDK 아파트에 살고 있다. 1LDK는 거실·주방 겸 식사공간·방이 각각 하나인 주택 형태를 뜻한다.
프라이버시를 확보하기도 어렵다. 식사공간 일부를 막아 만든 간이 방에 아이 둘이 자고, 나머지 한 명은 부부 침실에서 함께 잔다.
맞벌이 가정으로 가계 연소득은 약 10만 달러(약 1억4500만 원) 정도다. 일본이라면 ‘파워커플’로 불릴 만한 수입이지만, 뉴욕에서는 중산층에 해당한다고 닛케이는 강조했다.
이 주부는 “집을 사고 싶어도 예산 80만 달러 정도로는 좋은 매물을 찾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같은 시에 사는 47세의 고등학교 교사도 주택 문제에 분노하고 있다. 그는 2021년부터 지역 예술가와 주민을 연결하는 야외 행사를 운영해 왔지만, 친구들이 하나둘씩 떠났다. 그는 “경제적 사정이 달랐다면 그들은 이곳에 남아 있었을 것”이라며 공동체 붕괴를 한탄했다.
뉴욕시는 2000년 이후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건축 규제를 완화했다. 그러나 그 결과 생겨난 것은 ‘럭셔리’를 내세운 초고층 고급 아파트뿐이었다. 토지, 자재, 인건비 등의 비용이 증가하면서 개발은 자연스럽게 고가 주택에 집중됐다.

미국 부동산 정보 사이트 리얼티닷컴에 따르면 3분기 뉴욕 주택 월세 중간값은 3599달러(약 520만 원)로, 이는 세전 기준 주민 평균 가계소득의 절반 수준이다. 전년 대비 185달러,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범유행) 이전보다 약 20% 상승했다.
신축 주택 가운데 월세 5600달러 이상의 ‘럭셔리’ 아파트가 급증하며 평균 이하의 ‘저렴한’ 물건은 거의 사라졌다.
부동산 정보업체 스트리트이지의 케니 리 수석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연소득 8만~13만 달러인 중산층이 감당가능한 월세(2000~3250달러) 주택 재고는 8월 기준 9312건으로, 2019년의 절반 수준이다.
소득 수준별로 색을 구분한 뉴욕 지도를 비교해보면, 고소득층 거주 지역이 맨해튼 중심부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2000년에는 중산층이 다수 거주하던 맨해튼 남부 지역도 2023년에는 고소득층이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저소득층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비영리단체 ‘뉴욕어린이옹호단체(AFC)’가 지난달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2024~2025학년도(2024년 9월~2025년 6월)에 ‘집이 없는 상태’인 학령기 아동·학생은 15만4000명에 달했다. 뉴욕 공립학교 재학생 7명 중 1명꼴이다. 일부 저소득 지역에서는 아동의 20% 이상이 노숙을 경험했다.
2014년 노숙을 경험한 학생 수는 8만7000명이다. 10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조사 시작 이래 최다였던 전년도 기록을 또다시 넘어섰다. 지역 언론은 임시 보호시설을 전전하는 한부모 가정의 실태를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
학령기 노숙 아동을 지원하는 AFC의 제니퍼 프링글 국장은 “학생들이 전학을 반복하거나 학교가 너무 멀어지면 학업을 지속하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고통받는 중저소득층과 대조적으로, 고급 아파트의 생활은 전혀 다른 세상이다. 브루클린 다운타운 재개발 지역에 들어선 ‘브루클린 타워’에는 영화관, 당구장, 수영장, 헬스장 등이 갖춰져 있다. 로비는 최고급 호텔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화려하다. 운동복 차림이나 반려견을 데리고 로비를 오가는 30~40대 입주민들은 도어맨과 인사를 나눈다.
2021년 이 아파트로 이사 온 30대 후반의 한 여성은 패션 대기업에 근무하며 남편, 딸과 함께 산다. 남들이 부러워할 법한 생활이지만 그는 “이웃 간 인사가 거의 없다”며 외로움을 털어놓는다.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 자란 그는 “유복하진 않았지만 이웃은 가족처럼 가까웠다”며 “밤늦게까지 공원에서 놀고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던 기억이 그립다”고 회상했다.
악화하는 주택난은 4일(현지시간) 치러진 뉴욕시장 선거의 핵심 쟁점이었다. 맘다니는 ‘합리적 가격의 주택 공급 확대’와 ‘임대료 동결’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여론의 지지를 얻었다.
맨해튼 중심가를 한 블록만 걸어도 부유층, 직장인, 예술가, 노숙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스친다. 이러한 다양성과 혼잡함이 뉴욕의 매력이자 정체성이었지만, 그 ‘뉴욕다움’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닛케이는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