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우연찮은 기회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영화 <컨택트>를 다시 봤다. 개봉 당시 이 작품을 외계 생명체(햅타파드)와의 접촉이라는 SF적 설정을 지닌 언어철학 영화라 여겼는데, 다시 보니 언어의 문제를 넘어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기존의 관념과 당연함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더 깊은 통찰을 전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과학자 루이스는 “우리가 그들에게 망치를 준다면,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못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오늘날 금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전통적인 신용점수라는 단일한 도구, 획일적 잣대를 쥔 순간, 금융은 사람들의 다양한 가능성은 배제한 채 점수라는 ‘못’으로만 바라보게 된다. 그렇기에 금융 사각지대, 즉 중저신용자나 주부, 청년, 외국인 등 씬파일러(Thin-filer)를 향한 새로운 언어, 새로운 평가 방식의 모색은 절실하다. 기존의 망치를 내려놓고 다른 도구를 찾을 때 비로소 금융은 지금껏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던 이들과 소통하며 진정한 포용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온투금융의 출범 의의와 역할을 다시금 떠올려볼 수 있다. 온투금융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 선진국들의 주도하에 ‘포용금융(financial inclusion)’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풀기 위해 등장했다. 은행권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며 외면해왔던 씬파일러, 중저신용자, 소상공인 등을 새로운 방식으로 평가하는 혁신 금융의 제도화 모델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기술적 진보 덕분이었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은 이제 금융산업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고, 데이터 기반 신용평가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과거 획일화된 회귀 분석 모형이 선형적으로 과거의 패턴을 연장해 미래를 예측했다면, 오늘날의 머신러닝·딥러닝 기반 모델은 비선형적 데이터의 복잡한 상관관계까지 읽어내며 차세대 신용평가의 길을 열고 있다.
영화 <컨택트>에서 인간의 언어가 선형적으로 시간을 배열했다면, 햅타파드는 시작과 끝이 구분되지 않는 원형의 비선형 언어를 사용한다. 이 언어를 이해하는 순간, 인간은 전혀 다른 차원의 소통과 사고를 경험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신용평가가 직선적이고 제한된 언어였다면, 인공지능 기반의 대안신용평가는 비선형의 언어를 통해 더 깊고 입체적으로 인간의 신용을 이해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이를 위한 기술적 실험이 주로 미국이나 영국 같은 금융 선진국의 이야기로만 여겨졌고 우리는 늘 선진사례를 수입해 적용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온투금융이 국내에 출범한 지 10년을 맞이한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는 국내 핀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는 금융 기술이 차세대 신용평가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인도네시아·베트남·호주 등 아세안 시장은 물론 선진 금융 시장까지 역수출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나라가 선진 금융기술을 단순히 수입하는 위치를 넘어 글로벌로 확산되는 금융기술 공급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가 국내외 주요 금융기관에 공급하는 AI 리스크 관리 설루션은 단순한 신용점수를 넘어 통신요금 납부 이력, 소비 성향 등 비금융정보까지 종합 분석해 심사에 반영하고 있다. 더 나아가 대출 전략·운영·관리 전 과정에 적용할 수 있는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확장되면서 리스크 관리의 전 주기가 정교하게 혁신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상환 능력이 충분하지만 신용거래 이력이 부족한 사회초년생 등의 금융 접근성을 높이고, 더 많은 사람이 제도권 금융 안으로 포용될 수 있는 길을 열고 있다.
영화 속 햅타파드가 사용하는 원형의 언어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완전성과 포용을 상징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대안신용평가 또한 이와 같다. 전통적 신용점수가 담아내지 못했던 이들을 원의 언어로 포용해 내는 것, 그것이 곧 진정한 포용금융이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언어에서 벗어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순간, 우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소통과 관계를 경험한다. 신용점수라는 익숙한 언어를 넘어 대안데이터라는 새로운 언어를 받아들이는 순간, 오늘날의 금융은 비로소 더 많은 이들을 품을 수 있다. 포용금융의 완전한 원을 그려가는 길, 그것이 지금 우리가 걸어야 할 여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