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협상력 강화로 생존 기로에
파업땐 오히려 車부품사 실적 충격
납품 차질 협력사 하루 수억 손실
조선·물류 등 핵심업무 마비 심각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앞두고 중소 협력업체 현장에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단체교섭권 확대와 손해배상 청구 제한의 취지는 ‘노동자 보호’지만 실제 부담은 하청업체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원청 노조의 협상력만 강화시켜 오히려 하청업체에 부담을 떠넘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재계 및 정치권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8월 임시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을 상정해 처리할 예정이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넓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노조나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자동차 부품업계는 가장 먼저 타격이 예상되는 분야다. 공급망이 길고 복잡한 업종 성격 탓에 부품 하나만 막혀도 생산라인이 서고, 이는 부품사의 실적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현대자동차, 기아 등의 하청업체 노조가 교섭력을 무기로 협력사들에 임금·근로조건 인상을 직접 요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수천 개 부품 중소업체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동차 부품사는 원청 단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라 협상력이 취약하다.
부품사 한 관계자는 “우리가 원청과 계약할 때는 이미 단가가 정해져 있어 인건비나 추가 비용을 반영할 수 없다”며 “노조가 직접 교섭을 요구하면 회사 문 닫으라는 말과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완성차 한 대에는 평균 2만여 개 부품이 들어가며 국내 등록 부품업체는 8700여 곳에 달한다. 이 가운데 70% 이상이 연 매출 100억 원 이하의 중소기업이다. 노조와의 교섭이 현실화될 경우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협력업체의 생존 위기로 이어진다. 원청에서 파업이 벌어져 공장가동률이 낮아지면 협력사 매출과 근로자 소득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의 부품 계열사 파업 당시 부품 공급 중단으로 현대차 울산공장 일부 생산라인 가동이 멈추는 일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일부 2차 협력사들은 납품 차질로 하루 수억 원의 매출 손실을 기록했다.

조선·물류업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대형 조선소 하청업체나 쿠팡 등 유통 대기업의 물류센터 하청업체들은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이 높아 노조의 교섭 요구가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대규모 하도급 구조에 의존하는 조선업은 특성상 경영 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대형 조선소들은 수천 개 협력업체와 얽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우조선 사태다. 2016년 이후 조선업계 불황기가 길어지면서 원청 근로자 임금은 인상 없이 정체, 하청 근로자 상대임금은 하락하며 격차가 커졌다. 이에 2022년 6월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임금 인상과 단체교섭 등을 요구하며 옥포조선소 1독을 점거하고 51일간 파업을 벌였다. 대우조선해양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진수 작업이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다. 대우조선해양은 결국 진수 중단 등으로 8000억 원대 손실을 봤다며 하청노조를 상대로 47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협력 업체는 직영만 따져도 100여 곳에 달한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돼 노사갈등이 심화하면 발주받은 물량을 납기 안에 소화하지 못할 것이고 그럼 매출 영업이익에도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설명했다.
쿠팡으로 대표되는 유통업계도 노란봉투법 영향권에 놓여 있다. 쿠팡의 물류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직고용 배송기사인 쿠팡친구와 개인사업자 개념인 ‘퀵플렉서’를 운영하고 있다. 쿠팡친구와 퀵플렉서는 현 노조법상 단체교섭권이 없으나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원청의 교섭 범위가 확대돼 쿠팡 본사와 직접 교섭이 가능해진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협력업체 직원이나 배송기사들까지 파업에 참여하면 물류, 배송 등 핵심 업무가 마비될 수 있다”면서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영업에 막대한 손실이 발생할 것이 뻔한데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도 쉽지 않게 되면 기업으로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경제계는 일제히 노란봉투법에 반발하고 있다. 경제6단체는 “노조법 개정안은 협력업체 노조의 원청업체에 대한 쟁의행위를 정당화하고 기업의 사업경영상 결정까지 노동쟁의 대상으로 삼아 우리 경제를 위태롭게 하는 법안”이라고 우려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협력기업 노조가 교섭을 요구하고 파업을 할 수 있게 되는데, 중소제조기업 50%가 수급기업인 상황에서 거래 단절과 이로 인한 피해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최소한 1년 이상 시간을 가지고 노사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산업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