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권리 내용 대부분 삭제
트럼프 측 인사들이 초안 수정
적년에 비해 4개월가량 지연 발표

미국 국무부가 12일(현지시간)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발표한 인권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인권 상황이 여전히 매우 심각하다고 지적했지만 전임 정부의 보고서보다 북한 분량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고, 북한 정치 체제에 대한 지적은 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국무부는 이날 ‘2024 세계 인권보고서’를 공개하고 북한에 대해 “북한 정부는 사형, 신체 학대, 강제 실종, 집단 처벌을 포함한 만행과 강압을 통해 국가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했다”면서 “한 해 동안 북한의 인권 상황에 큰 변화는 없었다”고 평가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때인 작년 4월에 나온 '2023 국가별 인권보고서'와 비교해 비슷한 인권 문제 의식이 반영됐지만, 북한 정치 체제에 대해서는 비판 내용이 사라졌다. 2023년 보고서에서는 북한 주민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정부를 선택할 수 없으며 당국이 야당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서술했다. 또 북한 정부의 부정 부패도 문제로 이번 보고서에는 빠졌다. 북한에 대한 분량은 25장으로 전년도 53장에서 크게 줄었다.
한국의 인권에 대해서는 “정부가 국가보안법과 기타 법률, 헌법 조항의 해석 및 시행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인터넷을 통한 접근을 제한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윤석열 전임 정부가 작년 12월 야기한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스라엘ㆍ엘살바도르 등 우호적 관계를 맺는 국가에게는 전 정부 보고서보다 무디게 평가했지만 유럽·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 갈등을 빚고 있는 나라에 대해서는 날을 세웠다. 수십년간 전 세계 인권 옹호가의 기본 참고서가 돼온 국무부의 인권보고서가 '선택적 비판'을 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스라엘 관련 부분은 작년 보고서보다 훨씬 짧아졌으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심각한 인도주의 위기나 사망자 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가자 보건부에 따르면 2023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공격에 대응한 이스라엘 군사작전으로 약 6만1000명이 사망했다.
엘살바도르에 대해서는 “중대한 인권 침해에 대한 신뢰할 만한 보고는 없었다”고 명시했다. 이는 2023년 보고서에서 ‘중대한 인권 문제’로 불법적·자의적 살해, 고문, 가혹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교도소 환경 등을 신뢰할 만한 사례로 열거했던 것과 대조된다.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과 엘살바도르의 양자 관계는 강화됐다. 미국은 나입 부켈레 대통령 정부의 협조로 엘살바도르로의 이민자 송환을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 정부는 이들을 이곳에 1년 동안 수감하는 대가로 엘살바도르에 600만 달러를 지불했다.
반면 보고서는 유럽에서 표현의 자유가 훼손되고 있다고 경고했으며, 브라질과 남아공에 대한 비판을 강화했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은 루마니아·독일·프랑스 등에서 우파 지도자들이 탄압받는다고 주장하며 유럽 정치에 반복적으로 개입했고, 이민 비판과 같은 견해를 검열한다고 유럽 당국을 비난해왔다.
브라질과 남아공은 미국과 여러 사안에서 마찰을 빚어 왔다. 브라질에 대해 지난해 보고서가 중대한 변화 없음이라고 평가했던 것과 달리, 올해 보고서는 인권 상황이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고,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발언을 불균형적으로 억압했다고 비판했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2022년 대선 패배를 무력으로 뒤집으려 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트럼프는 이를 마녀사냥이라고 규정하며 브라질산 상품에 50% 관세 부과를 주장했다.
남아공에 대해서는 “국가 내 소수 인종인 아프리카너(백인 보어인)에 대한 인권 침해가 있었다”면서 “인권 상황이 현저히 악화됐다”고 보고서는 평가했다. 지난해 보고서는 인권 상황에 중대한 변화가 없다고 기술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에는 아프리카너를 인종적으로 차별받는 토지 소유자들에 대한 폭력 피해자로 규정하고, 그들을 미국에 재정착시키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아울러 바이든 행정부 시절 보고서에 포함됐던 성소수자(LGBTQ+) 권리 침해 비판 내용은 대부분 빠졌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칭됐다.
보고서는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이 국무부의 초기 초안을 ‘미국 우선주의’ 가치에 맞추기 위해 대폭 수정하면서 발표가 몇 달간 지연됐다. 공개된 보고서는 국무부의 대규모 개편 이후 작성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보고서 작성의 주도 부서인 ‘민주주의·인권·노동국’ 소속을 포함한 수백 명이 해고됐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4월 기고문에서 해당 부서가 ‘좌파 활동가들의 플랫폼’이 됐다며, 이를 서구적 가치에 초점을 맞추도록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을 전통적으로 추구해 온 미국의 기조에서 벗어나, 이를 다른 나라 내정 간섭으로 보고 있다. 대신 특정 국가에 대한 비판은 해당 국가와의 전반적 관계 및 정책 방향에 따라 선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