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동훈의 사회읽기] 지역소멸을 막는 길 ‘압축도시’

입력 2025-04-22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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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사회학과 교수

인구감소 핵심은 ‘좋은 일자리’ 부재
‘일·주거·상업’ 집중…접근성 높이고
대학·기업 참여 지역산업 육성해야

인구 감소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이는 지역 기반을 무너뜨리는 시작이다. 사람이 줄어들면 체력단련시설, PC방, 병원, 치과의원·한의원, 의원·약국, 노래방·제과점, 세탁소·목욕탕, 이·미용실, 주유소 등의 순으로 생활 서비스가 임계점에 도달하고, 그 후에는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

일본 정치인 마스다 히로야는 그의 저서 ‘성장을 지속하는 21세기를 위해: 저출산 극복을 위한 지방 활력 전략’에서 이 현상을 ‘지방 소멸’이라 명명했다. 그에 따르면, 특정 지역사회 인구가 일정 수준 이하로 줄어들면, 생활 서비스는 유지될 수 없게 되고, 결국 여성과 청년이 빠르게 전출한다. 이는 지역사회의 핵심 기능이 마비되는 것으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는 해당 지역이 지리적 공간만 남은 채 사회적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한국 역시 이 같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행정안전부는 2021년 전국 89개 기초 지방자치단체를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했다. 이들 대부분은 농산어촌 지역으로, 일부 구도심도 포함되어 있다. 이 지역은 이미 인구 감소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지역을 떠나는가? 답은 분명하다.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청년이 떠나는 것도, 중장년층이 돌아오지 않는 것도, 외부 인재가 정착하지 않는 것도 모두 생계의 문제다. 여기에 더해 교육·의료·문화 인프라가 취약하고, 대형마트나 영화관 같은 생활편의시설도 부족하다. 아이를 키울 학교도, 책을 읽을 도서관도, 아플 때 찾아갈 병원도 없는 지역에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삶의 기본 요소가 무너진 곳은, 더 이상 삶의 터전이 될 수 없다.

오늘날의 청년들은 과거처럼 애향심만으로 고향에 머물지 않는다. 좋은 일자리, 안정된 생활, 성장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인구감소지역은 저숙련 외국인 노동자 중심의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고급 인력은 빠져나가고, 단기 외국인 노동자만 들어오는 구조는 지역사회의 기반을 더 취약하게 만든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2023년 ‘제1차 인구감소지역대응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여기서는 맞춤형 일자리 창출, 정주 여건 개선, 생활 인구 유입을 3대 전략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좋은 일자리’ 창출의 실질적 모델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자리가 없거나 불안정하다면, 어떤 인센티브도 정착을 유도하기 어렵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보조금이나 단기 사업이 아니다. 지역 중심의 내생적 성장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방자치단체와 대학, 기업이 협력해 지역 특화산업을 육성하고, 그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예산을 대폭 확대해 시장 기능을 활성화하고, 인구감소지역 맞춤형 ‘좋은 일자리’ 창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공공형’과 ‘시장형’이 조화를 이루는 모델이 필요하다. 동시에, 지역대학은 쇠퇴의 상징이 아니라, 디지털 전환과 기후 변화 대응 역량을 갖춘 ‘글로컬 인재’를 양성하는 새로운 거점으로 거듭나야 한다.

중장기 전략으로는 ‘압축도시(compact city)’ 개념이 주목된다. 이는 지역사회 인프라 유지 비용을 줄이고, 거주지·일자리·상업시설을 한곳에 집중시켜 일상생활의 접근성을 높이는 도시 설계 방식이다. 압축도시는 농촌형과 도시형으로 나뉘며, 기존 거주지의 재배치를 전제로 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소통과 설득이 중요하다. 동시에, 중견기업 유치와 연계한 직업훈련, 평생학습 시스템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대학, 기업이 데이터 기반으로 산업 수요와 노동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는 지역 인구 구성의 재편이다. 이제 지역은 더 이상 기존 주민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기존 주민, 귀향민, 귀농·귀촌인, 다문화가족, 외국인 노동자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문화갈등 없이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세대 간, 문화 간 벽을 허무는 작업은 ‘사회적 포용’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일자리, 교육, 주거, 의료, 상업, 문화시설 등 생활 서비스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제 지역은 ‘돌아갈 고향’이 아니라, ‘머무르며 살아갈 공간’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누군가에겐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지역 소멸을 막는 길은 사람을 다시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일에서 시작된다. 머무르고, 돌아오고, 들어오게 하라. 그것이 곧 한국사회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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