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 쿠바 전 국가평의회 의장, 타계

입력 2016-11-26 15:07 수정 2016-11-26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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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공산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25일(현지시간) 밤 타계했다고 주요 외신들이 쿠바 현지 언론을 인용해 일제히 보도했다. 향년 90세.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 평의회 의장은 자신의 형인 피델 카스트로가 25일 밤 10시29분 세상을 떠났다고 국영TV를 통해 발표했다. 1926년생인 피델은 1959년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친미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쿠바 혁명에 성공했다.

그는 반세기 가까이 쿠바를 이끌다가 건강 문제로 2006년 친동생 라울에게 정권을 넘기고 2008년 공식 직위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 피델 카스트로는 누구인가?

본명은 피델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루스(Fidel Alejandro Castro Ruz)로 1926년 8월 13일 농부인 앙헬 카스트로 아시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페인의 북서지방 갈리시아에서 쿠바로 이주해온 그의 아버지는 농장에서 도면 설계 노동자로 일했다.

그의 아버지는 1895년 쿠바의 독립을 위해 에스파냐군에 맞서 싸웠고 1898년 미국의 지원을 받아 에스파냐군을 몰아내는데 일조를 했다. 1902년 쿠바 공화국이 선포되었으나 완전한 독립을 하지 못했고 미국이 다시 쿠바를 점령, 친미정부를 통한 사실상 식민지배를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쿠바의 바이렌에 농장을 만들어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농부의 삶으로 돌아갔다.

앙헬 카스트로는 마리아 루이사와 결혼을 하여 두 딸을 낳았지만, 관계가 틀어져 이혼을 한 후 가정부였던 리나 루스 곤살레스와 재혼을 하여 세 명의 아들과 네 명의 딸을 낳았다. 피델 카스트로는 이 가운데 세 번째 자녀이다. 당시 리나와 앙헬 카스트로는 피델이 누구의 성을 따를지를 놓고 심하게 다투었으나 결국 부모의 성을 함께 사용해 '피델 카스트로 루스'로 불리었다. 그러나 피델은 아버지를 존경하여 자신을 소개할 때 간편하게 피델 또는 피델 카스트로라고 소개했다고 했다.

형제들과 함께 가정교사의 집에서 자란 피델은 가정교사가 집에서 보내오는 생활비를 횡령하면서 불우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피델 카스트로는 8살 때 가톨릭 교회에 입교했지만 결국 무신론자가 되었다. 피델 카스트로는 세례를 거부하는 등 가톨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쿠바 산티아고에 있는 라살 기숙학교에 전학을 가게 된다. 라살 기숙학교에서도 문제를 일으켜 퇴학을 당한 피델 카스트로는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돌로레스 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1945년 쿠바 하바나의 엘 콜레히오 드 벨렌로 학교로 전학하면서 수영, 등산, 탁구, 육상, 농구, 야구 등 여러 가지 운동을 했으나 학문적으로 뛰어나지는 않았다. 피델 카스트로는 법에 흥미가 생겨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되고 성적도 좋아져 아바나 대학교에 입학, 법학을 공부했다.

그는 우연히 쿠바 정권에 항의하는 학생 운동에 연루되고 라몬 정권으로부터 학생 운동의 주모자로 찍혀 어려움을 겪었다. 이로 인해 피델 카스트로는 오히려 더 학생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나 운동권 내에도 부패가 많아 학생 운동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1946년 대학생 연맹 회장이 된 피델 카스트로는 학생 운동을 반부패적이고 청렴하게 이끌었다. 라몬 정부의 친미정책과 미국의 제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했고 푸에르토리코의 자주독립을 위해 국제적인 학생 운동 조직을 만들었다.

그는 좌익단체인 사회주의 혁명 운동세력, 반정부 혁명 연합 및 쿠바 사회당과 연합을 하여 거대한 국제 좌익 학생 운동 조직망을 구축했다. 그 후부터 카스트로는 여러 신문의 첫 페이지를 차지하였고 쿠바 국민으로부터 큰 지지를 얻게 되었다.

라몬 정권이 학생 운동의 임원을 전원 체포하는 등 탄압을 가했지만 카스트로는 자신을 따르는 좌익 학생 운동가들을 무장시켜 대항했다. 1947년 피델 카스트로는 도미니카 공화국을 독재자인 라파엘 트루히요 대통령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혁명을 추진했으나 작전을 실행에 옮기기도 발각돼 대부분의 혁명세력들이 검거됐다. 피델 카스트로는 수영으로 도망치는 등 가까스로 검거를 피했고 1948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도미니카에서 쫓겨온 이민자들을 위해 무료 변호를 해주면서 사회적 경험을 쌓았다.

1948년에 마르타 디아스 발라트와 혼인을 한 후 사회정치활동을 본격화했다. 카스트로는 쿠바에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과 이에 동조하는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에 대항하는 민족주의자로 활약을 했다. 1953년 몬카다병영을 습격하다 체포되었으며 재판을 받고 투옥되었다가 나중에 풀려났다. 그는 멕시코로 가서 당시 쿠바 정권을 공격할 조직을 설립해 훈련을 시켰고 1956년 12월 체 게바라 등과 함께 공격을 실행했다. 카스트로는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킨 쿠바 혁명으로 권력을 잡아 쿠바의 총리가 되었다.

1965년 쿠바 공산당 제1서기가 되어서 쿠바를 일당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만들었다. 1976년 그는 각료회의 의장 겸 국가평의회 의장에 취임했다. 또 쿠바의 최고위 군사직인 ‘코만단테 엔 헤페(Comandante en Jefe, 최고 사령관)’에도 올랐다.

카스트로는 장출혈로 수술을 받는 등 고령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2006년 국가평의회 제1부의장이었던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력을 이양할 뜻을 밝혔으며, 2008년에는 의장직이나 최고 사령관직에서 사퇴키로 공식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08년 2월 쿠바 국회는 라울 카스트로를 신임 국가평의회 의장으로 선출했다. 2011년 4월 20일, 피델 카스트로는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공식 직함이었던 공산당 제1서기직까지 라울 카스트로에게 물려주며 공식 은퇴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집권한 지도자(52년 2개월)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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