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 또 하나의 세월호 사건

입력 2016-04-21 10:21 수정 2016-04-2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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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완(연세대 로스쿨 교수)

지난주 토요일은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2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저려 오는 마음을 감내할 길이 없다. 세월호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회사법을 공부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이 사건은 ‘회사’가 사회에 대하여 얼마나 엄청난 부정적 외부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소설가 김훈은 ‘세월호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고 우리 사회의 비리와 문제가 다 드러나고 있는 것이죠. 파렴치하고 무자비하게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을 정치권력이 방치해 놓고 (중략) 세계화, 경쟁, 자유화, 국제화나 경쟁력 강화, 이런 자본주의적인 가치와 자본주의적인 목표, 그 이면에는 어떤 진실성을 갖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반성해야 하는 계기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소설가 김훈 “세월호는 사고의 문제 아닌 이 사회의 비리”, 2014.10.3 JTBC 인터뷰.)

‘세월호 사건’에서 회사는 대주주의 사금고에 불과했고, 횡령과 배임과 같은 범죄 행위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직원들은 부당한 대우와 박봉에 시달렸고, 선박의 이용자는 최소한의 안전 조치도 배려 받지 못했다. 회사의 경영자가 선박의 안전을 무시한 대가로 304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어야 했다.

그런데 최근 또 하나의 세월호 사건이 문제가 되고 있다. 바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언론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은 530여명이고, 이 중에 143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심지어 대부분의 사망자가 영유아 또는 임산부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의 제조물 책임 사건이다. 검찰은 2012년에 이미 피해자들의 고발이 있었음에도 올해가 되어서야 전담팀을 구성하여 수사를 시작하였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PB상품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롯데마트가 겨우 대국민 사과를 하고 피해 보상에 나서겠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많은 피해를 발생시킨 제품의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는 책임 부인과 사실 은폐로 일관하고 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영국 회사인 레킷벤키저가 옥시를 인수하면서 설립한 회사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옥시레킷벤키저는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주식회사를 유한회사로 조직 변경을 하였으며, 회사 명도 ‘RB코리아’로 바꿨다고 한다. 심지어 제품 유해성 검사 결과를 조작하기 위해 서울대 연구팀을 이끄는 교수에게 뇌물을 제공한 정황도 포착되었다.

회사의 탐욕과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이 결합했다는 점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세월호 사건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가 제품의 유해성을 알았는지를 명명백백하게 밝혀 주었으면 한다. 새롭게 구성되는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것도 방법이다. 그리고 다시는 ‘세월호 사건’과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미국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동일한 일이 벌어졌다면 해당 회사는 천문학적인 징벌 배상으로 진즉 망했을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회사 이름을 바꿔 버젓이 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회사가 무서운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옥시’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번 기회를 통해 모든 회사에게 사람의 생명을 해하는 물건을 팔았을 때 다시는 사업을 못 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심어 주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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