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석의 야단법석]남양유업과 일본 유키지루시

입력 2013-05-27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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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문을 닫기로 했습니다.”

2002년 2월 22일. 일본 최대 식품회사 유키지루시(雪印)의 이와세 고시로(岩瀨弘士) 사장이 초췌한 모습으로 카메라 플래시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1월 23일 국민께 눈물로 용서를 빈 지 한 달 만이다. 호주산을 일본산으로 위장해 정부보조금 1억9600만 엔을 타낸 것이 문제가 됐다. 그런데도 회사측은 사실 은폐와 축소, 변명과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1년 6개월 전에도 이 회사 사장은 눈물로 국민께 용서를 구했다. 위생관리가 제대로 안된 우유를 유통해 학생 등 1만4789명이란 사상 최대 집단 식중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당시 국민은 기업에 기회를 줬지만, 이번엔 달랐다. 유키지루시 식품회사의 매출은 70%까지 급감했고, 주가는 곤두박질치면서 폐업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은 두 번 배신한 기업에 아예 등을 돌렸다. 일본 국민이 윤리와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악덕기업’을 시장에서 퇴출한 대표적인 사례다.

유키지루시 식품은 1925년 설립된 유키지루시 유업의 자회사로 일본의 햄과 소시지 시장의 86%를 점유하면서 국민 브랜드로 사랑을 받았지만, 하루아침에 몰락했다.

유키지루시 식품을 보면 남양유업의 행태가 오버랩 된다. 두 기업이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게 된 원인은 다를지언정 부도덕한 면에서는 대동소이하다. 남양유업이 오히려 한 술 더 뜬다. 적어도 오너 개인의 사리사욕은 없었다. 욕설 파문 전후 홍원식 회장은 임원들을 방패 삼아 뒤에서 주식을 내다 팔았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홍 회장의 ‘주식 매각’ 시점을 보면 욕설 파문이 일었던 지난 4일 직전부터 9일 대국민 사과 당일까지 모두 10차례에 걸쳐 70여억원을 현금화했다. 이 기간 주가는 폭락했고, 회사는 ‘개인 채무’를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곧이 들리지 않는다.

여기에 남양유업은 전체 광고 99%를 홍 회장 동생이 소유주로 있는 광고회사에 몰아준 의혹도 받고 있다. 모두 새 정부가 강조하는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처사다.

회장은 꽁무니를 빼고, 전·현직 직원은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누구하나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회사조직을 보면 40년 역사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오합지졸에 가깝다.

최근에는 ‘남양유업이 어용단체를 설립했다’는 말까지 나돈다. 자숙은커녕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하다.

남양유업은 1997년 말 외환위기로 허리띠를 졸라맨 국민을 상대로 돈 몇 푼 더 벌자고 ‘분유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러니 국민이 남양유업을 곱게 볼 리 없다. 한마디로 과거처럼 ‘소나기 피하자’는 심산으로 치부하고 있다.

일본 명문기업의 신뢰가 무너지는 데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윤리의식 부족,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 부족, 소비자 외면, 사실 은폐·축소 등이 근본적 원인으로 지적됐다.

남양유업이 과거처럼 임기응변 식의 ‘난국 해법’에 골몰한다면 큰 오산이다. 오히려 몰락한 일본 명문기업의 전철을 밟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 특단의 조치를 내리는 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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