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들의 명암]현대판 세종·왕자의 난…'2세'들의 희비극

입력 2012-03-12 10:47 수정 2012-03-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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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장남 대신 총수에…현대는 형제간 권력 다툼

▲LG그룹은 '장자승계'를 이어가고 있다.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에서 2세 구자경 회장, 3세 구본무 회장 모두 장자에게 승계됐다. 사진은 지난 7일 대전광역시 소재 LG화학 기술 연구원에서 전기자동차부품의 연구개발현황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구본무 LG 회장(왼쪽 세번째)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호암미술관 정문 앞. 지난해 11월 18일 오전 10시 30분께 검은색 에쿠스 차량 수십대가 줄지어 정문을 통과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타고 있는 롤스로이스 팬텀 차량도 정문을 지났다.

삼성과 CJ, 신세계, 한솔 등 범(汎) 삼성가 일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고 이병철 회장의 24주기 추모식이지만 장자인 이맹희씨의 모습은 이날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를 추모하는 자리지만 자식들마다 그 추억의 깊이는 남다를 터. 특히 해마다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이맹희씨의 그림자에는 동생에게 그룹 경영권을 빼앗긴 ‘장자의 한(恨)’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창업주인 아버지가 피 땀 흘려 일으킨 기업을 물려받은 2세대 2인자들은 아버지의 눈에 들어 종가집을 거머쥔 이들과 작은 집을 얻어 분가를 한 이들로 ‘명암’이 나뉜다. 장남이 종가집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장자’전통을 깨고 아우에게 경영권을 빼앗긴 경우는 그 한숨이 더욱 짙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지 못한 장자들은 종가집을 차지하기 위해 소위 ‘왕자의 난’을 일으키기도 하고, 소송을 불사하기도 한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대권 손에 쥔 ‘2인자’ = 세종과 양녕대군, 이건희 회장의 경영권 승계는 종종 이들에 비유된다. 태종이 장자인 양녕대군을 두고 셋째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줬듯, 고 이병철 회장이 장자인 이맹희 씨를 두고 경영능력 검증과정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이건희 회장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회장은 경영수업 기간에 삼성의 반도체 사업을 주도했다. 74년 국내 최초 웨이퍼 가공업체 한국반도체가 파산 위기에 놓이자 인수에 나섰고, 이후 미국 전역을 돌며 반도체 전문가를 영입해 삼성 반도체 신화를 창조한 셈이다.

이 회장은 후계자가 된 뒤에도 오랜 기간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1942년생인 그는 66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삼성물산, 동양방송 등을 거쳤고, 그 뒤 삼성그룹 부회장에 오른 것은 78년, 회장직에 오른 것은 87년이다. 삼성 계열사에 입사해 그룹 총수에 오를 때까지 21년이 걸린 셈이다.

현재 삼성그룹은 3세대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으로의 승계를 준비하고 있다.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은 5남 정몽헌을 현대그룹의 후계자로 낙점했지만 순탄한 과정을 걷지는 못했다.

권력 앞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형제간 ‘골육상쟁’을 보여준 ‘1, 2차 왕자의 난’은 후계를 둘러싼 2남 정몽구 회장과 5남 정몽헌 회장의 대결이었다. 현대가의 실질적인 장자였던 정몽구 회장에 비해 승계 정통성이 부족했던 정몽헌 회장은 아버지의 숙원사업인 대북사업을 승계해 경영권을 물려받으려 했다. 아버지의 강력한 지지로 정몽헌 회장은 그룹 회장으로 올라섰지만, 결국 현대그룹은 2남 정몽구가 현대자동차그룹을, 3남 정몽근이 현대백화점그룹을, 5남 정몽헌이 현대그룹을, 6남 정몽준이 현대중공업그룹을 맡아 분할됐다. 이후 현대그룹은 정 회장 사후 부인 현정은 회장이 맡았다.

하지만 현대차와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두고 벌인 치열한 인수전에서 알 수 있듯 ‘정통성’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LG그룹은 장자에게 상속된 경우다. 창업주 고 구인회 회장에서 2세 구자경 회장, 3세 구본무 회장 모두 장자에게 승계됐다. 다만 구본무 회장의 장남의 사망으로 지난 2004년 구광모 LG전자 차장이 양자로 입적됐다. 따라서 4세대 역시 장자에게 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구 차장은 구 회장의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SK그룹은 고 최종건 회장이 사망하면서 동생 최종현 회장이 그룹을 이어 받았다. 현재는 최 회장의 장남 최태원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김종희 전 회장의 죽음으로 29세의 나이로 회장직에 올랐다. 이후 동생 김호연 씨가 장남 김 회장을 상대로 지난 1992년 ‘상속무효 및 상속재산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경영권 분쟁을 벌였지만 95년 소송을 취하하면서 매듭됐다.

롯데그룹은 창업주 신격호 회장이 호텔롯데의 총괄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2세인 4명의 자녀가 그룹을 경영하고 있다. 장남 신동주 회장이 일본 롯데그룹, 차남 신동빈 회장은 한국 롯데그룹을, 장녀 신영자 사장은 롯데쇼핑을, 차녀 신유미 씨가 호텔롯데의 고문을 맡고 있다. 신동빈 회장은 2남이지만 롯데쇼핑의 최대주주이며,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의 회장으로 향후 한국 롯데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진그룹은 고 조중훈 창업주의 사망 후 장남 조양호 현 회장이 그룹 경영권을 승계했다. 동생 조남호 씨, 조수호 씨, 조정호 씨가 각각 한진중공업, 한진해운, 메리츠화재 등을 맡아 경영했지만 상속분쟁이 불거지면서 조남호 씨와 조정호 씨는 각자 맡은 회사를 계열 분리했다. 한진해운은 지난 2006년 조수호 회장의 사망 후 부인 최은영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했다. 현재 조양호 회장의 1남2녀는 모두 계열사 임원으로 재직해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권력을 두고 형제간 '골육상쟁'을 보여줬던 현대그룹. 고 정주영 회장의 장남 정몽구 현대차 회장(왼쪽 세번째)은 현대그룹의 적통을 잇는다는 명목으로 '현대건설'을 인수함으로써 '장자의 한'을 풀었다.
◇밀려난 2인자…‘장자의 한’ = 고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은 ‘비운의 황태자’로 불린다. 한때 이 전 회장이 ‘사카린 밀수사건’의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자 아버지를 대신해 그룹 회장직을 맡아 계열사를 경영했지만, 결국 경영권 싸움에서 동생에게 밀려났다.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진 그가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2월,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차명재산 반환 청구소송을 서울지방법원에 제기하면서부터다. 소장에서 이 전 회장은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주식은 아버지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재산이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다른 상속인에게 알리지 않고 명의 신탁을 해지한다는 이유로 이 회장 단독 명의로 변경해 버렸다”며 “삼성생명 주식 824만 주와 삼성전자 주식 20주, 1억 원 등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이 전 회장은 삼성에버랜드를 상대로 삼성생명 주식 100주와 1억원도 청구했다.

장자승계가 전통으로 여겨지던 당시 재계에서 장자인 그가 그룹 총수자리를 동생에게 빼앗겼으니 억울함이 더할 터, 실제로 이 전 회장은 지난 1993년 출간한 수상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아버지와의 사이에 상당한 틈새가 있었지만 언젠가는 나에게 대권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었다”고 적은 바 있다.

이 전 회장은 또 “선대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대권을 넘기면서 차기에는 이재현 회장에게 물려주라고 유언했다”고 주장하는 등 장자후계의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고 정주영 회장의 실질적인 장남이었던 정몽구 현대차 회장은 현대그룹의 적통을 잇는다는 명목으로 ‘현대건설’을 인수함으로써 ‘장자의 한’을 풀었다. 과거 현대그룹의 상징적 의미였던 현대건설을 손에 거머쥔 후 장자로서 화려하게 귀환한 것이다.

그는 현대건설 인수후 10년 만에 다시 서울 종로구 계동 사옥으로 출근하면서 “꿈만 같다”고 소회를 밝힌바 있다. 정 회장은 고 정 회장의 집무실이 있던 12층에 집무실을 마련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정 회장은 ‘왕자의 난’으로 현대그룹이 분할한 후 지난 2001년 계동 사옥을 나와 양재동 사옥으로 옮긴바 있다.

재계 전문가들은 최근 삼성가의 소송을 보면 국내 재벌들이 여전히 기업을 개인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며 세대 교체과정에서 경영능력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계관계자는 “최근 삼성가의 소송을 보면 국내 재벌가들이 여전히 기업을 개인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며 “국내 대기업들이 대부분 가족 경영체제이다 보니 재산을 다음 세대에 넘기면 경영권도 넘어간다고 너무 쉽게 가정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경영권은 법적권리가 아니며 주주로부터 위임받는 권한”이라며 “그러나 재벌가 3세들은 경영능력의 검증과정 없이 30대의 젊은 나이에 임원으로 고속 승진해 그룹 전체의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특히 금호아시아나 그룹가 대표적인 케이스로 개인의 리스크를 그룹전체를 짊어진 꼴”이라며 “박삼구 회장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해 그룹 전체가 휘청이게 만든 사례로 외환위기 이후 이런 경우는 전무후무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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