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재수 부산시장이 북항 복합형 돔 아레나 건립을 정부에 공식 건의하면서 묘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 부산시장 경선에서 경쟁 후보가 내놓았던 구상과 현재 부산시가 추진하는 사업의 밑그림이 상당 부분 겹치기 때문이다.
북항이라는 입지부터 대형 아레나, 공연·문화 기능, 원도심 활성화, 사직야구장과의 기능 분리까지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하나다.
국민의 힘 주진우 의원이 ‘부산 오션 돔’으로 제시했던 구상이 전재수 시장의 시정에서는 5만석 이상의 초대형 돔 아레나로 몸집을 키웠다는 점이다.
부산시는 10일 부산을 방문한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과 함께 북항 현장을 찾아 복합형 돔 아레나 건립을 핵심 현안으로 설명하고 내년도 국비 지원을 요청했다.
전 시장은 복합형 돔 아레나가 북항을 해양·문화·관광 거점으로 만들고 원도심 활성화를 이끌 핵심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부산시장 경선에 나섰던 주진우 의원은 지난 3월 북항 재개발사업 랜드마크 부지에 최첨단 개폐형 아레나 ‘부산 오션 돔(Busan Ocean Dome)’을 건립하겠다고 공약했다.
약 3만3000평 규모의 북항에 K팝 공연과 글로벌 내한 공연, 국제 e스포츠 대회 등을 유치해 부산의 새로운 글로벌 공연·문화 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주 의원이 북항을 선택한 이유도 분명했다.
부산역과 국제여객터미널이 인접하고 향후 교통망 확충을 통해 접근성이 높아질 북항이 대형 공연장을 짓기에 최적의 입지라는 논리였다.
원도심 활성화 구상도 붙였다.
북항에 유입된 관광객이 남포동과 자갈치, 광복동, 영도로 이어지는 순환형 관광벨트를 구축해 북항의 개발 효과를 원도심 전체로 확산시키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부산시가 복합형 돔 아레나를 설명하면서 내세우는 ‘북항의 해양·문화·관광 거점’과 ‘원도심 활성화’라는 논리와 겹치는 지점이다.
주진우 의원의 공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돔 하나를 짓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핵심은 사직과 북항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주 의원은 당시 이미 국비가 확보돼 재건축이 추진 중인 사직야구장은 야구·스포츠 메카로 육성하고, 북항은 글로벌 공연과 e스포츠의 거점으로 특화하는 ‘투트랙 전략’을 제시했다.
정치적으로도 계산된 구상이었다.
사직야구장은 단순한 체육시설이 아니다. 부산 야구의 상징이면서 연제·동래권 지역경제와 맞물린 시설이다.
그래서 사직은 그대로 살리고 북항에 새로운 대형 시설을 하나 더 만드는 방식으로 해법을 짠 것이다.
사직은 야구장. 북항은 돔 아레나. 두 시설을 경쟁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나눠 부산의 두 개 거점을 동시에 키우겠다는 전략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선거 과정에서 전재수 시장의 구상 역시 북항 돔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당시 전 시장은 북항에 ‘바다가 보이는 돔 야구장’을 제안했다. 시즌에는 야구를 하고 비시즌에는 전시·공연·쇼핑·여가를 즐길 수 있는 복합공간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당시 주진우 의원의 공약과는 야구와 e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아레나라는 기능에서의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선거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현재 전재수 시장이 정부에 공식적으로 건의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돔 야구장이 아니다.
북항 복합형 돔 아레나다. 그리고 규모는 5만석 이상으로 거론된다.
주진우 의원이 제시했던 3만3000평 규모의 ‘부산 오션 돔’보다도 훨씬 큰 그림이다. 부산시가 추진하는 사업이 현실화된다면 북항에는 대형 공연·스포츠·문화 콘텐츠를 수용할 초대형 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결과적으로 주진우 의원이 경선에서 제시했던 ‘사직과 북항의 투트랙’이 전재수 시정에서는 보다 거대한 도시개발 프로젝트로 변형돼 등장한 셈이다.
물론 두 구상을 완전히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주진우 의원의 부산 오션 돔은 K팝과 국제 e스포츠 등 공연·문화 콘텐츠에 초점을 맞췄다.
전재수 시장의 복합형 돔 아레나는 아직 구체적인 시설 구성과 운영 방식이 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항이라는 장소, 대형 돔이라는 형식, 원도심 활성화라는 목표, 사직야구장과의 기능 분리라는 큰 틀까지 겹친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결국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공약의 출처가 아니다.
이제 부산시가 이 거대한 돔을 왜 지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5만석 이상 규모라면 건립비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재원으로 짓고, 누가 운영하며, 연간 몇 차례 대형 공연과 스포츠 행사를 유치할 것인지가 뒤따라야 한다.
관광객을 얼마나 끌어올 것인지, 북항을 찾은 사람들이 실제로 원도심 상권까지 이동하게 만들 수 있는지도 따져야 한다.
특히 수조원대 사업이 될 가능성이 있는 대형 프로젝트라면 ‘랜드마크’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부산시의회에서도 이미 북항 돔 아레나가 구상과 발표에 그치지 않으려면 전담조직과 전문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선거 때 경쟁했던 상대의 아이디어가 집권 이후 정책으로 채택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아이디어가 누구의 것이냐가 아니다.
시민에게 실제 이익이 돌아가느냐다.
주진우 의원은 경선에서 사직과 북항을 분리했다. 사직은 야구·스포츠의 중심지로 남기고 북항에는 공연과 e스포츠를 담은 새로운 아레나를 만들겠다고 했다.
전재수 시장은 이제 그 북항 구상을 정부에 공식 건의하고 있다.
다만 시장의 구상은 더 커졌다. 작은 공약이 거대한 사업으로 커지는 순간부터 책임의 무게도 달라진다.
선거 때의 공약은 표를 얻기 위한 약속일 수 있다.
하지만 시장이 정부에 국비를 요청한 순간부터 그것은 부산시민이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공공사업이 된다.
그래서 이제 시민이 물어야 할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인가’가 아니다.
주진우가 먼저 꺼낸 ‘사직은 야구장, 북항은 돔’이라는 투트랙이 전재수 시정에서 현실화 단계로 넘어왔다.
이제부터는 공약의 정치가 아니라 사업의 책임을 따져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