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기 DC·IRP 42.7조 몰려

퇴직연금이 ‘저축’에서 ‘투자’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회사가 운용을 책임지던 확정급여(DB)형과 원리금보장 상품 중심에서 가입자가 직접 굴리는 확정기여(DC)형·개인형퇴직연금(IRP), ETF·펀드 등 시장성 상품 중심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 노후자금이 단순한 ‘보관 자산’을 넘어 적극적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금으로 변하면서 금융권의 경쟁구도와 자본시장 수급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17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과 키움증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53조9000억원으로 전 분기 508조7000억원보다 45조1000억원(8.9%) 증가했다. 늘어난 돈의 행선지는 뚜렷했다. 기업이 운용을 책임지는 DB형은 2조4000억원(1.1%)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DC형은 20조1000억원(14.1%), 개인형 IRP는 22조6000억원(15.7%) 불어났다. DC·IRP 증가액만 42조7000억원으로 전체 증가분의 94.7%에 달한다.
장기 흐름을 보면 변화가 더 선명하다. 전체 적립금에서 DB형 비중은 2019년 3분기 61.1%에서 올해 2분기 40.5%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개인형 IRP는 13.2%에서 30.0%로 두 배 이상 확대됐고 DC형도 25.7%에서 29.5%로 높아졌다. 회사가 운용하는 방식보다 가입자가 직접 상품을 선택하는 계좌가 시장 성장을 이끄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운용 방식도 달라졌다. 올해 2분기 전체 퇴직연금에서 원리금 비보장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35.7%로 2020년 2분기 10.7%에서 세 배 이상 확대됐다. 반대로 원리금보장 상품 비중은 같은 기간 89.3%에서 64.3%로 낮아졌다. 퇴직연금 100원을 기준으로 투자상품에 들어간 돈이 6년 전 약 11원에서 현재 약 36원으로 커진 셈이다.
증시 강세는 이 같은 흐름을 가속한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6월 기준 원리금 비보장 상품 가운데 주식형의 최근 1년 수익률은 82.8%로 채권형 3.2%를 크게 웃돌았다. 채권혼합형과 주식혼합형도 각각 23.0%, 32.8%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2분기 위험자산 선호가 높아지면서 실적배당형 상품으로의 자금 이동이 더욱 빨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회사별 성장 속도도 갈렸다. 2분기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전 분기보다 23조4000억원(16.5%) 불어난 165조원이었다. 은행은 17조4000억원(6.6%), 보험은 4조4000억원(4.3%) 증가했다. 잔액에서는 은행이 여전히 가장 크지만 성장률은 증권사가 크게 앞섰다.
노후자금의 투자계좌화는 자본시장 수급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DC·IRP가 커질수록 주식뿐 아니라 채권 수요도 함께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퇴직연금이 DC·IRP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장기적으로 채권형 ETF·펀드를 통한 국내 우량채의 수요 기반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