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경기지사"9개월짜리 예산, 미완의 미생"…경기도 곳간 20년만에 바닥

입력 2026-08-05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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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채 한도 99.6% 소진·기금 5588억원 전용… 7700억원 감액 추경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5일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하고 있다. 추 지사는 20년 만의 지방채 발행과 9개월치 민생예산 편성 실태를 공개하며 4대 재정 정상화 방안을 밝혔다. (경기도)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5일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하고 있다. 추 지사는 20년 만의 지방채 발행과 9개월치 민생예산 편성 실태를 공개하며 4대 재정 정상화 방안을 밝혔다. (경기도)
경기도 살림에 빨간불이 켜졌다.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도민 앞에 펼쳐 보인 장부에는 12개월이 아닌 9개월치만 채워진 민생 예산이 남아 있었다. 노인장기요양도, 아이들 급식비도, 산후조리비도 10월이면 돈줄이 끊긴다.

5일 이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추 지사는 이날 경기도청 브리핑룸 기자회견에서 "2026년 8월 5일 이 시간부로 '경기도 재정 비상상황'을 공식 선언한다"고 밝혔다. 1420만 도민을 향해 재정 실상을 있는 그대로 공개하겠다는 비상조치선언이었다.

△ "새 사업은커녕 하던 사업도 못 지킬 지경"

추 지사는 재정난이 부풀려졌다는 시선부터 걷어냈다. 그는 "재정 상황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두고 일시적 어려움을 과장하는 것 아니냐, 민선 9기 공약사업 추진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오해도 들었다"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지금 경기도는 새로운 공약사업을 추진하기는커녕 이미 진행 중인 사업조차 온전히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선 8기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상당수 민생사업과 필수사업의 올해 예산을 12개월이 아닌 9개월분만 편성했다"며 "취임 직후에야 이 중대한 사실과 구체적인 재정 실상을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더 무겁게 짚은 대목은 내부 공유였다. 추 지사는 "1420만 도민의 삶과 직결된 재정 상황이 공직사회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고, 심각성마저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며 "상황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법을 찾겠나"라고 했다.

△ 10월이면 끊기는 예산…돌봄·급식·산후조리비

3개월치가 통째로 빠진 사업은 도민 생활에 곧바로 닿는 항목들이다. △노인장기요양 약 1234억원 △소아응급책임의료기관 육성 약 10억원 △친환경 우수농축산물 학교급식 지원 약 34억원 △경기도 산후조리비 지원 약 80억원 △도교육청 유·초·중·고 급식비 지원 약 584억원 △가족돌봄수당 약 14억원 △농작물 재해보험 가입지원 약 29억원 △시내버스 공공관리제 운영지원 약 291억원이다.

추 지사는 이 장부에 이름을 붙였다. "미완(未完)의 미생(未生) 예산"이다. 그는 "지방채를 발행하고 각종 기금까지 끌어다 쓰며 눈속임으로 당장의 위기를 넘겼지만, 그렇게 하고도 올해 예산조차 온전히 편성하지 못했다"며 "그 대가는 고스란히 민생예산의 부실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한도 99.6% 채운 지방채…남북협력기금은 44억원만 남아

수치는 더 선명하다. 경기도는 2025년 한 해 3차례에 걸쳐 약 943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했다. 발행 한도 9460억원의 99.6%다. 지방채 발행 자체가 20년 만이었다.

2025년 5월에는 용도가 정해진 기금까지 끌어쓸 수 있도록 통합재정안정화기금 조례를 개정했다. 이후 3차례 추경으로 각종 기금의 약 5588억원이 통합계정을 거쳐 일반회계 등으로 옮겨갔다. 남북교류·평화협력 사업을 위해 조성한 남북협력기금은 384억원 가운데 340억원이 빠져나가 44억원만 남았다.

당장 필요한 감액 추경 규모는 약 7700억 원. 추 지사는 "이제는 마른 땅에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것처럼 더 이상 끌어다 쓸 재원도, 위기를 미룰 여력도 남아 있지 않다"며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가리는 동안 재정을 바로잡을 골든타임마저 놓쳐버렸다"고 했다.

△ 41조7000억원 중 손댈 수 있는 돈은 3조5000억원

구조도 취약하다. 경기도 전체 예산은 약 41조7000억 원이지만 정책 판단으로 쓸 수 있는 재원은 약 3조5000억 원에 그친다. 나머지는 복지사업, 국비 매칭사업, 시·군 조정교부금처럼 쓸 곳이 이미 정해져 있다.

서울시와 달리 경기도 본청에는 지방소득세가 없다. 보통교부세를 받지 못하는 불교부단체이면서도세의 절반 이상을 부동산 경기에 출렁이는 취득세에 기댄다. 취득세 수입은 2022년 약 11조 원에서 올해 약 8조 원으로 30%가량 줄었다. 3기 신도시 취득세도 공공임대비율 확대와 LH 직접개발 방식으로 당초 예상 6500억 원에서 2300억 원 수준으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신도시가 들어서면 교통·소방·기반시설 비용은 경기도 몫이다.

기업 유치도 같은 구조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위해 전력·용수·교통망에 투자해도 법인지방소득세는 시·군에 귀속된다. 추 지사는 "인프라 투자를 주도한 경기도는 단 1원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쓸 돈은 늘어난다. 복지예산은 전체의 약 49%로, 지금 추세면 60%에 이를 수 있다. 2022년 이후 도 인구는 약 30만명 늘었지만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그 2배인 약 60만 명 증가했다. 최근 5년 고령인구 증가율은 연평균 6.8%로 전국 평균 5.4%를 웃돈다.

△ "도지사인 저부터"…4대 정상화 비상조치 방안

추 지사가 내놓은 해법은 네 갈래다. △도지사와 고위공직자의 각종 경비 감액 △낭비성 예산 편성·집행 전면 차단 △공직조직 체질 개선 △세입구조 정상화를 위한 제도 개혁이다.

일회성·선심성 행사와 불요불급한 사업은 중단하거나 원점에서 재검토한다. 추 지사는 이미 불필요한 행사 중단을 지시했으며 그런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관행적으로 반복돼온 연구용역과 민간위탁·대행사업도 타당성과 효과를 재평가해 추진 여부를 정한다. 도지사 직속 참모 조직부터 재정비하고 실·국과 공공기관의 칸막이를 없애 인력을 재배치한다.

추 지사는 "도지사인 저부터 책임을 다하겠다"며 "도지사를 포함한 고위 공직자부터 본(本)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민생 후퇴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재정 위기를 이유로 민생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며 "도민의 생명과 안전, 취약계층 보호 등 반드시 확보해야 할 예산은 끝까지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제도개혁 과제로는 지방소비세 확충, 기업 유치에 따른 세수의 합리적 배분, 국고보조사업의 과도한 지방비 부담 개선을 국회와 정부에 요구하겠다고 했다. 추 지사는 기획예산처 장관을 만나 제도 개선을 건의했고 경기도의회를 찾아 재정 실상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추 지사는 "그 고통을 사회적 약자와 서민의 삶에 떠넘기지 않겠다. 불필요한 곳에서 먼저 줄이고 더 큰 책임이 있는 곳에서 더 많이 감당하는 공정한 재정개혁을 추진하겠다"며 "지금의 어려움을 다음 세대의 빚으로 넘기지 않고 더 나은 경기도를 위한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는 경기도의회와 31개 시·군에 협력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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