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이미 호러물인데 공포 영화가 무서울 리 있나요 [이슈크래커]

입력 2026-06-10 09:14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영화 '애나벨 집으로(Annabelle Comes Home)' 스틸컷.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애나벨 집으로(Annabelle Comes Home)' 스틸컷. (사진제공=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과거 청춘들은 삶이 지칠 때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를 보며 위안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Z세대정반대입니다. 이들은 현실의 피로를 잊기 위해 달콤한 사랑 이야기보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공포 영화를 선택합니다. 마냥 밝고 행복한 이야기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공감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들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세상이 이미 호러물인데 해피엔딩을 어떻게 믿냐"는 Z세대. 이들은 대체 왜 '무서운 이야기'에 열광하는 걸까요?

'가성비 대박' 터진 호러 시장, 흥행 견인차는 '2030 관객'

▲젊은 관객이 이끈 공포 영화 '백룸'과 '옵세션' 흥행 성과. (AI 기반 편집 이미지)
▲젊은 관객이 이끈 공포 영화 '백룸'과 '옵세션' 흥행 성과. (AI 기반 편집 이미지)

공포 신드롬은 극장가의 매출 지표로 고스란히 증명됩니다. 7일(현지시간) 북미 영화 흥행 통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현지 개봉한 '백룸(The Backrooms)'은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3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북미 오프닝 스코어만 8140만달러를 기록하며 A24 역대 최고 오프닝 기록을 갈아치웠는데요. 북미를 제외한 국가의 누적 박스오피스 성적은 7760만달러로, '백룸'은 현재까지 2억1265만달러(약 330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습니다. 이는 제작비 1000만달러의 20배가 넘는 수치인데요. 시장조사기관 포스트트랙(PostTrak) 조사 결과 이 영화를 본 관객의 무려 85%가 35세 미만이었고 절반 이상이 25세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달 15일 개봉한 영화 '옵세션(Obsession)'의 흥행세는 한술 더 뜨는데요. 이 영화는 단 75만달러의 초저예산으로 제작되었음에도 글로벌 흥행 수익 2억2400만달러(약 3000억원)를 돌파했습니다. 개봉 한 달이 지난 시점에도 입소문을 타며 대작 '만달로리안과 그로구'를 제치고 주말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할리우드 리포트에 따르면 '옵세션' 관객의 약 75%가 18~34세에 집중되었다고 합니다.

▲영화 '살목지' 포스터. (사진제공=㈜쇼박스)
▲영화 '살목지' 포스터. (사진제공=㈜쇼박스)

국내 상황도 비슷합니다. 올해 4월 개봉한 '살목지'는 323만 관객을 돌파하며 올해 대표 흥행작 반열에 올랐습니다. CGV 예매 데이터에 따르면 관객 비중은 20대가 34%로 가장 높았으며 30대 23%, 40대 18%, 10대 14%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10·20·30대 관객 비중은 총 71%에 달하는데요. 이는 국내에서도 MZ세대가 공포 영화 시장을 주도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귀신보다 무서운 현실⋯Z세대가 공포 영화에 빠진 이유

지난해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Statista)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Z세대 소비자의 무려 91%가 공포 영화나 호러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모든 연령대 중 압도적인 1위 기록입니다. 광고대행사 덴트(Dentsu)의 캐시 복솔 엔터테인먼트 부문 글로벌 총괄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공포물은 Z세대가 코미디와 액션 다음으로 선호하는 세 번째 장르"라며 "북미 지역 영화 티켓 구매에서 공포 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17%로, 10년 전 4%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수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극장 관객 6명 중 1명은 공포 영화를 보러 온 셈이죠.

그렇다면 Z세대는 왜 무서운 영화를 찾아 극장으로 향할까요? 그 이유는 공포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이들이 마주한 '현실 공포'를 투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 '백룸(Backrooms)' 포스터. (사진제공=(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영화 '백룸(Backrooms)' 포스터. (사진제공=(주)바이포엠스튜디오, 리바이브콘텐츠(주))

2005년생으로 만 20세인 케인 파슨스 감독의 영화 '백룸'은 가구점 주인이 점차 내면의 어둠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파슨스의 유튜브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끝없는 미로 같은 가구점 지하 공간을 통해 고립감, 트라우마, 제한된 미래 가능성 등 Z세대에게 익숙한 주제를 다룹니다.

▲영화 '옵세션(Obsession)' 포스터. (사진제공=CINEMARK)
▲영화 '옵세션(Obsession)' 포스터. (사진제공=CINEMARK)

1999년생으로 만 26세인 커리 바커 감독의 영화 '옵세션' 역시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닌데요. 물론 영화에서는 여느 공포 영화처럼 잔혹한 장면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음반 가게 직원 '베어'가 짝사랑하는 직장 동료 '니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마법이 깃든 나뭇가지를 사용하면서 벌어지는 피 튀기는 이야기를 다루지만, 그 이면에는 이른바 '레드필(red pill)' 문화'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가 남성에게 불리하게 설계됐다고 주장하며 페미니즘 종식과 전통적 가치관 회귀를 강조하는 온라인 문화를 공포 서사와 정교하게 결합한 것입니다.

로런 쿡 심리치료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Z세대와 함께 공포 장르도 변하고 있다"며 "과거처럼 잔혹한 장면이나 피 튀기는 연출에 집중하기보다 현실 속 어두운 문제들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용 불안, 경기 침체, 불황, 팬데믹을 온몸으로 겪어낸 Z세대에게는 귀신이나 좀비보다 당장 눈앞의 현실이 더욱 거대한 호러물인 셈입니다.

"해피엔딩은 안 믿어요"⋯재난이 일상이 된 세대의 '방구석 생존법'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사실 1997년부터 2012년 사이에 태어난 Z세대는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위기를 일상적으로 경험하며 자라왔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들의 유년기 배경이 됐고, 청년이 된 현재는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더욱 불확실해진 취업 시장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전 지구적인 기후 재난과 청춘의 한 페이지를 통째로 삼켜버린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죠.

영화·드라마 분석 플랫폼 '더 드라마 드라이브 인(The Drama Drive-In)'을 운영하는 케이틀린 루아노 고등학교 교사는 CNN을 통해 "모든 세대는 자신만의 공포 장르를 갖고 있다"며 역사적 맥락을 짚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인간을 날카로운 도구로 잔인하게 학살하는 '슬래셔' 영화가, 1980~1990년대에는 악마 숭배 공포(Satanic Panic) 속에서 '더 크래프트(The Craft)' 같은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는 설명입니다. 이어 "2000년대 좀비 영화 열풍이 테러와의 전쟁과 군사주의적 분위기를 반영했다면, 지금의 Z세대는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고 이런 특성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공포 장르와 잘 맞아떨어진다"고 분석했습니다.

▲국내 MZ세대 정신 건강 및 심리 상담 경험 조사. (사진=AI 생성)
▲국내 MZ세대 정신 건강 및 심리 상담 경험 조사. (사진=AI 생성)

한국 MZ세대의 심리 통계를 보면 '공포 유행' 현상이 더 명확히 이해됩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MZ세대의 70.9%가 현재 정신 건강 및 스트레스 관리가 필요하다고 응답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실제로 병원이나 상담소 등 심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는 비율은 고작 6.4%에 불과했습니다.

마음은 아픈데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이들이 선택한 탈출구는 스크린을 통한 '방구석 감정 관리'였습니다. 실제로 제일기획 매거진에 인용된 20대 감정 관리 행동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56.3%가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으로 '유튜브·웹툰 등 콘텐츠 보기'를 꼽았습니다. 거대한 사회적 불안을 해소할 길이 없는 청춘들이 극장과 방구석에서 공포 영화 등의 콘텐츠를 소비하며 스스로 긴장과 감정을 통제하는 방식을 터득한 것입니다.

공포는 도피가 아니라 '통제 가능한 불안'이다

Z세대의 공포 콘텐츠 소비는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일종의 적극적인 '감정 조절 전략'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미국심리학회(APA)에 따르면 인간은 통제 가능한 환경에서 공포를 경험할 때 오히려 불안을 낮추고 스트레스에 대한 내성을 키울 수 있다고 하는데요. 실제로 영국 서식스대 연구팀은 공포 영화를 시청하는 동안 심박수가 뛰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지만, 동시에 "이 위협은 실제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작동하면서 긴장이 해소되는 '안전한 공포' 효과가 나타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Z세대가 마주한 현실 조건과 맞물리며 더욱 강력하게 작동하는데요.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는 Z세대를 다른 세대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경제적 불안을 더 크게 느끼는 집단으로 분류하기도 했죠.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첫해에 전 세계 우울증과 불안증 환자 비율이 25%나 급증했고, 특히 청년층의 정신건강 악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질병관리청의 '청소년건강행태조사'를 보면 청소년의 우울감 경험률은 2022년 25.2%에서 2023년 26.0%로 증가했고,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비율 역시 2020년 10.9%에서 2023년 13.5%로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이 불안을 해소할 사회적 안전망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죠.

세상이 이미 충분히 무섭기 때문일까요. 역설적이게도 Z세대는 공포 영화 속에서 현실보다 더 큰 안도감을 찾고 있습니다. '언젠가 확실히 끝나는' 공포 영화를 통해 감정을 마음껏 분출하고 위안을 얻으며 다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고 있는 셈이죠.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알립니다] 2026 대한민국 금융대전 개최합니다
  • 단독 한화엔진, AM 떼고 방산 붙인다…그룹 사업 재편 착수 [김동관式 방산 퍼즐]
  • 뉴욕증시, 기술주 반락에 혼조...나스닥 0.97%↓ [상보]
  • 미군, 아파치헬기 격추에 보복 공습…이란도 미사일·드론 반격
  • 내수 부진에 빚으로 버틴다…골목상권 대출 356조 '역대 최대'
  • 카카오 20년 만에 ‘첫 파업’… 오늘 5개 계열사 노조 4시간 부분 파업
  • 45년간 시멘트에 갇힌 공간⋯‘서울숲의 심장’ 되다[서울 복합개발 리포트 ⑳-끝]
  • 낮은 생존율 넘는다…K바이오, 췌장암 치료 혁신 도전
  • 오늘의 상승종목

  • 06.10 12:35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2,184,000
    • -2%
    • 이더리움
    • 2,447,000
    • -1.96%
    • 비트코인 캐시
    • 302,700
    • -2.1%
    • 리플
    • 1,681
    • -2.61%
    • 솔라나
    • 96,850
    • -1.77%
    • 에이다
    • 242
    • -2.81%
    • 트론
    • 483
    • -0.82%
    • 스텔라루멘
    • 283
    • -4.39%
    • 비트코인에스브이
    • 16,990
    • -4.82%
    • 체인링크
    • 11,610
    • -1.28%
    • 샌드박스
    • 75.24
    • -0.46%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