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계 자산 관리의 패러다임이 과거 '안전한 예금' 중심에서 '수익성 높은 투자' 중심으로 급격히 이동하며 연 5% 수준의 수익률조차 만족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전 세대에 걸쳐 보편화되고 있다.
원금 보존보다 수익 극대화에 방점을 찍는 경향이 사회 전반의 기본값으로 자리 잡으면서 연 2%대 예금 금리는 더 이상 자산 관리 수단으로서의 매력을 상실했다는 평가다.
18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시중은행의 1년 만기 정기예금 평균금리는 연 2.93%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자산 가치 보전도 어려운 수준이라는 인식이 확산한 데다, 최근 기록적인 증시 불장이 이어지면서 예금은 자산 관리 포트폴리오에서 가장 먼저 퇴출당하는 신세가 됐다.
이러한 저금리 기조는 국내 증시 활황 영향과 함께 대중의 기대수익률에 대한 인식을 급격히 바꿨다. 과거 연 2~3%의 금리에도 만족하던 투자자들이 코스피 지수가 1년 사이 200% 넘게 오르고 국내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주가 역시 올해에만 150% 가까이 상승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정기예금의 연 2.93% 확정 금리는 기회비용 측면에서 사실상 '손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개인형퇴직연금(IRP) 적립금 규모는 2023년 말 76조원에서 2025년 말 131조원으로 불어났다. 최근 연간 수익률은 5.85~5.90%대를 기록하며 예금 금리를 2배가량 웃돌고 있음에도 투자자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은퇴 자금마저도 예금의 안전망을 벗어나 초과 수익을 노리고 있지만 자본시장의 변동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적으로도 근로 소득보다 투자 수익률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월급 인상률보다 개인 투자 수익률이 자산 격차를 결정짓는 핵심 지표로 인식되고 있으며, 일과 후 스마트폰 사용이 자유로워진 군대 내에서도 병사들이 금융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질 정도로 전 연령대에서 개인 투자는 일상이 됐다.
기저에는 '포모(FOMO·나만 뒤처진다는 공포)' 심리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주변 지인들이 주식이나 코인 투자로 원금의 몇 배를 벌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예금이나 안전한 연금에만 머물러 있는 이들은 심리적 박탈감과 함께 강한 투자 압박을 느끼고 있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진다"는 위기감이 예금 통장을 비우고 공격적인 투자로 내모는 거대한 심리적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변화는 가계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는 한편 소비 패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산 가치 상승기에 나타나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로 인해 소비가 진작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존재하나, 반대로 투자 수익률에 일희일비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실물 경제의 변동성도 함께 커졌다는 우려가 공존한다. 낮은 예금 금리가 대중을 투자의 바다로 내몰면서 가계 자산 구조가 한층 더 시장 의존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박태형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PB지점장은 "기업들의 이익 증가율이 주가 상승 속도보다 빠르게 나타나고 외국계 IB들도 한국 주가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면서,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투자자들도 이제라도 옮겨 타야 한다는 포모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저축이 가장 안전하다는 과거의 인식은 완전히 무너졌으며, 이제는 위험 자산으로의 자금 이동이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됐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