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 없는 운동회?...아이들에게 ‘이것’ 길러주지 못한다

입력 2026-05-1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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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장 위에 놓인 축구공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운동장 위에 놓인 축구공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운동회에서 지면 우리 아이 자존감이 떨어지니까요.

최근 일부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승패를 가리지 않거나 경기 결과를 모두 무승부로 처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아이가 경기에서 지고 속상해했다는 학부모 민원이 이어지면서다. 운동회 소음 민원으로 경찰이 출동하는 사례까지 나오면서 교육 현장에서는 운동회 자체가 점점 ‘조용해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운동회 관련 112 신고는 350건으로, 이 중 345건에 경찰이 현장 출동했다. 운동회를 둘러싼 민원과 부담이 커지면서 최근 초등학교 운동회는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응원하던 모습 대신 학년별 미니 운동회나 실내 운동회가 늘고, 경쟁 요소 역시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갈등을 줄이고 아이들의 상처를 최소화하는 방식처럼 보인다. 하지만 교육계와 스포츠 심리학계에서는 이런 변화가 오히려 아이들의 회복탄력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회복탄력성은 실패와 좌절을 겪은 뒤 다시 회복하고 도전하는 힘을 의미한다.

“지는 경험도 성장 과정”…해외서도 이어진 논쟁

▲운동장에서 친구를 일으켜주는 아이. (사진=챗GPT AI 생성)
▲운동장에서 친구를 일으켜주는 아이. (사진=챗GPT AI 생성)
이 같은 논쟁은 해외에서도 이어져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참가상(participation trophy)’ 문화다. 참가만 해도 모두에게 상을 주는 방식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 혹은 실패를 견디는 힘을 약화시키느냐를 두고 오랜 논쟁이 이어졌다.

결론은 모두가 상을 받는 ‘참가상’ 문화가 아이들의 성장에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 승리하는 경험보다 패배 이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경험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쟁 과정에서 좌절과 실망을 겪고 이를 극복하는 경험이 회복탄력성과 감정 조절 능력을 키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해외 청소년 발달·행동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이기고 지는 경험 자체가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5~12세 시기에는 경쟁 과정에서 긴장감과 성취, 아쉬움 등을 경험하며 안정적인 자존감과 회복탄력성을 형성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스포츠 심리학 전문가들 역시 스포츠 경기를 통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부담감이나 불안, 승부욕 같은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을 중요한 사회화 과정으로 본다. 패배 이후 감정을 조절하고 다시 도전하는 과정에서 회복탄력성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어린 시절부터 실패와 좌절을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아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게 된 이유

▲학교 행정실에서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의 모습. (사진=챗GPT AI 생성)
▲학교 행정실에서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의 모습. (사진=챗GPT AI 생성)
다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단순히 일부 학부모의 예민함 때문만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실패의 비용이 지나치게 커진 사회 분위기 역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입시와 취업, 인간관계, 경제적 경쟁까지 실패를 ‘회복 가능한 경험’이 아니라 ‘낙오’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부모 역시 아이가 좌절을 경험하는 것 자체를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교사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이 집중되는 구조와 악성 민원 부담까지 더해지며 학교는 점점 더 안전하고 무난한 선택을 하게 된다.

실제 현장에서는 운동회 도중 아이가 다치거나 갈등이 발생할 경우 교사 개인이 민원 대응과 책임 부담을 떠안는 사례가 적지 않다. 결국 학교 입장에서는 승패 자체를 흐리거나 경쟁 요소를 줄이는 방식이 가장 ‘문제 없는 선택’이 되는 셈이다.

‘항상 승리하는 방법’은 없다

▲이어달리기를 하는 아이들. (게티이미지뱅크)
▲이어달리기를 하는 아이들. (게티이미지뱅크)
교육 전문가들은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완벽한 승리 경험보다 실패 이후 다시 일어서는 경험이라고 강조한다. 실제 삶에서는 언제나 이길 수 없고, 좌절과 경쟁을 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경쟁에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패배와 실망을 건강하게 받아들이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에 가깝다. 넘어지지 않게 만드는 것보다,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어쩌면 운동회에서 아이들이 배워야 했던 것은 ‘항상 이기는 법’이 아니라, 졌을 때 다시 친구들과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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