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시계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명분을 앞세워 거래 시간 연장과 24시간 거래 체계 도입을 밀어붙이면서, 시장의 피로도는 한계치에 다다랐다.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와의 주도권 싸움 속에서 ‘잠들지 않는 시장’을 만들겠다는 포부는 당당하지만, 그 논리의 이면에는 유리한 것만 골라 취하고 불리한 것은 외면하는 이기적인 ‘체리피킹(Cherry-picking)’이 자리 잡고 있다.
거래소가 거래 시간 연장을 정당화할 때 전면에 내세우는 잣대는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이다. 미국 증시가 24시간 거래를 추진하니 우리도 발을 맞춰야 경쟁력이 생긴다는 논리다. 하지만 정작 자본시장의 근본적 체질 개선을 위한 ‘코스피·코스닥 양 시장 분리’ 논의 앞에서는 철저히 안색을 바꾼다.
미국은 다수의 거래소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시장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구조인 반면, 우리나라는 한 지붕 아래 모든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기형적 구조다. 시간은 미국을 닮아야 한다면서, 정작 시장 간의 건강한 경쟁을 유도하는 구조 개편에는 '한국적 특수성'과 '투자자 보호'라는 방어막 뒤로 숨어버린다.
최근 정치권과 금융투자업계에서 제기된 ‘거래소 지주회사 전환 및 코스닥 분리’ 개편안에 대해 거래소 측은 여전히 신중론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는 코스닥이 독립적으로 운영될 경우 시장의 정체성이 강화되고 혁신 기업 중심의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지만, 거래소 노조와 경영진은 “시장 투기화가 우려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이는 결국 독점적 수수료 수익이라는 ‘그림자’ 속에서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 규제와 구조는 한국식을 고집하면서, 돈이 되는 시간 연장만 글로벌 기준을 찾는 이중잣대가 시장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현장의 비명은 무시된 채 시계만 빠르게 돌리는 행정은 결국 독이 될 뿐이다. 증권사들은 늘어난 거래 시간만큼 시스템 유지비와 인력 운용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밤샘 근무의 굴레에 갇혔다. 실질적인 유동성 증대 효과는 미미한데, 껍데기만 미국식으로 바꾼다고 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리 만무하다. 알맹이 빠진 혁신은 혁신이 아니라 탐욕의 연장선일 뿐이다.
진정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단순히 문을 오래 열어두는 것에 있지 않다. 독점적 권력을 분산하고, 각 시장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구조적 경쟁을 도입하는 결단이 먼저다. 문제는 기득권이라는 ‘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혁신의 본질을 왜곡하는 거래소의 비겁한 논리다. 한국거래소는 언제까지 입맛에 맞는 데이터만 골라 쓰며 시장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걸까. 정부는 이제 거래소 분리라는 진짜 숙제를 해결함으로써 자본시장의 뒤틀린 시계를 바로잡아야 할 차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