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백의(白衣) 고혈압’

입력 2026-04-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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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심리 상태만큼이나 변화무쌍한 것이 혈압이다. 이른바 ‘백의(白衣) 고혈압’이라는 것이 있다. 평소에는 안정적이던 혈압이 병원, 특히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앞에서 측정할 때 유독 높게 나오는 현상이다. 많은 이들이 “긴장해서 그렇다”고 쉽게 말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긴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지만, 마음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처럼 백의 고혈압은 단순한 진단명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환자의 불안과 기대 그리고 자기 질병에 대하여 제대로 설명받고 치료를 받으려는 심리가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의사는 숫자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되며 혈압계의 눈금 뒤에 있는 환자의 속마음까지 들여다보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환자에게는 혼란이나 더 나아가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가 되어 환자를 바라볼 때와 환자가 되어 의사 앞에 앉았을 때는 전혀 다른 세계가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다. 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궁금한지, 어떤 설명이 필요한지 항상 생각해야 한다. 환자의 표정, 태도, 질문의 내용은 모두 중요한 임상 정보가 될 수 있다. 의학은 환자의 증상을 통해 배우고 완성된다. 물론 환자에게도 역할이 있다. 질병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리고 궁금한 점을 적극적으로 질문하려는 용기다. 여기에는 때때로 요령이 필요한데 쉽지는 않겠지만, 환자 역시 의사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다. 더 나은 진료는 의사와 환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환자에게도 의사에게 설명할 권리와 함께 책임이 있다.

아서 프랭크(Arthur W. Frank·캐나다 캘거리대학 사회학 교수)는 “질병은 이야기로 서사화돼야 한다”고 , 질병을 삶의 이야기의 일부로 해석했다. 이런 해석은 우리 질병을 더 깊고 넓게 볼 수 있는 통로로도 활용될 수 있는 것이다. 백의 고혈압은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는가? 질병이 환자와 의사에 대한 이야기로 서로 나눠지고 있는가? 진료실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시작되는 공감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치료일지도 모른다. 서종호 부천시민의원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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