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늑구'의 귀환 ⋯ 동물도 감정을 느낀다

입력 2026-04-21 06:00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최근 대전의 한 동물원을 탈출했던 늑대 ‘늑구’가 열흘간의 산속 방랑 끝에 무사히 돌아왔다. 늑대가 탈출했다는 재난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많은 이들이 ‘느닷없이 늑대와 마주치면 어쩌나’ 하는 상상에 마음 졸였을 것이다. 하지만 포획 소식 아래 달린 댓글들은 나의 이기적인 걱정과는 전혀 다른 온도를 품고 있었다.

낯선 산속을 헤맸을 늑구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혼자 얼마나 춥고 무서울까”, “집 나가면 고생인데 얼른 돌아와”, “무서워하지 말고 잡혀줘”. 사람들은 잔뜩 웅크린 늑구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공포’와 ‘외로움’을 읽어냈고, 무사 귀환에 안도했다. 마치 가족이 돌아온 것처럼.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든다. 늑구는 정말 인간이 정의하는 그 ‘감정’을 느꼈을까? 늑구의 뇌 안에서 벌어진 일은 우리가 댓글로 남긴 따뜻한 서사와 일치할까?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감정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흔히 감정을 인간만의 고유한 내면 경험으로 여긴다. 하지만, 현대 생물학과 행동과학은 동물 역시 분명한 ‘감정 상태’를 가진다고 말한다. 심박수, 호르몬 변화, 행동 패턴을 통해 공포와 스트레스는 물론, 낙관성이나 비관성까지도 추정할 수 있다. 이제 동물에게 감정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감정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역할’이다. 생물학 관점에서 감정은 결코 낭만적 부산물이 아니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는 감정을 빠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학적 프로그램’으로 설명한다. 공포는 도망치게 하고, 쾌감은 다가가게 만든다. 복잡한 계산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이 점에서 동물의 감정은 매우 명확하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직접적 신호다. 행동을 유도하는 장치이며, 선택을 단순화하는 도구다. 감정은 느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움직이기 위한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우리는 감정을 경험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을 해석하고, 이야기로 만든다. 공포는 문학이 되고, 슬픔은 기억이 되며, 분노는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 인간은 감정을 느끼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감정을 설명하는 존재다. 늑구를 향한 댓글들 또한, 감정을 통해 타자를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인간 특유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감정의 ‘기능’이 인공지능(AI) 연구에서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기계가 인간처럼 무언가를 느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강화학습’ 알고리즘에서 ‘보상’과 ‘벌점’은 행동을 조정하는 핵심 신호로 작동한다. 잘된 선택은 강화되고, 잘못된 선택은 약화된다. 그리고 이 구조는 우리가 쾌감과 불쾌감을 통해 행동을 바꾸는 방식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최근 구글 딥마인드(DeepMind) 등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에 ‘호기심’이나 ‘불안’과 유사한 변수를 주입했을 때 학습 효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감정은 여기서 더 이상 느낌이 아니다. 그것은 탐색을 유도하고, 선택을 가속하는 계산적 장치다. 늑구가 생존을 위해 공포를 사용했다면, 미래의 AI는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불안’을 활용해 더 나은 해를 찾아갈지도 모른다.

다시 늑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정말 외롭고 두려웠을까? 그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집에 가고 싶다’는 감정은 인간의 서사에 더 가깝다. 늑대에게 더 중요한 것은 낯선 환경의 위험 신호, 먹이를 찾으려는 동기,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의 감정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작동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질문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그가 ‘무엇을 느꼈는지’가 아니라, 그 감정이 ‘그를 어디로 움직이게 했는가’라는 질문으로.

그리고 이 질문은 우리 자신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은 지금 우리를 어디로 움직이게 하고 있는가? 늑구의 귀환이 우리에게 던진 뜻밖의 숙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1년 만에 2억 뛴 전세”⋯막막한 보금자리 찾기 [이사철인데 갈 집이 없다①]
  • 홈플러스익스프레스 본입찰 초읽기…‘메가커피’ 운영사 승기 잡나
  • 추워진 날씨에 황사까지…'황사 재난 위기경보 발령'
  • 삼바ㆍSK하닉ㆍ현대차 실적 발표 앞둔 코스피…이번 주 주가 향방은?
  • 기술력 뽐내고 틈새시장 공략…국내 기업들, 희귀질환 신약개발 박차
  • "더 큰 지진 올수도"…일본 기상청의 '경고'
  • 재건주 급등, 중동 인프라 피해액 ‘85조원’ 추산⋯실제 수주까지는 첩첩산중
  • 빅테크엔 없는 '삼성의 노조 리스크'…공급망 신뢰 흔들릴 판 [노조의 위험한 특권中]
  • 오늘의 상승종목

  • 04.21 10:13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12,669,000
    • +1.75%
    • 이더리움
    • 3,439,000
    • +1.06%
    • 비트코인 캐시
    • 658,500
    • +0.77%
    • 리플
    • 2,116
    • +0.91%
    • 솔라나
    • 126,800
    • +1.12%
    • 에이다
    • 370
    • +1.65%
    • 트론
    • 486
    • -1.22%
    • 스텔라루멘
    • 260
    • +3.59%
    • 비트코인에스브이
    • 23,680
    • +3.14%
    • 체인링크
    • 13,850
    • +1.69%
    • 샌드박스
    • 119
    • +1.7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