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의 발단은 한전과 한수원이 2009년 공동 수주한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약 1조4000억원 규모의 추가 공사비 정산이다. 한수원이 모기업인 한전을 상대로 비용을 요구하다 합의에 실패하자 국내외 대형 로펌을 동원해 국제 중재라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연초 업무보고에서 "영국까지 가서 국부를 유출하며 법률 비용을 쓰고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다"며 강하게 질타했다. 최근 정부가 중재 관할을 런던 국제중재법원(LCIA)에서 대한상사중재원으로 이관할 것을 권고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투입된 수백억원대의 로펌 수임료 등 혈세 낭비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단순히 '비용 정산' 문제가 아니다. 기형적으로 쪼개진 우리나라 원전 생태계가 낳은 필연적 결과다. 2016년 이후 원전 수출 기능이 한전과 한수원으로 이원화되면서 지난 10년간 두 기관은 '팀 코리아'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물밑에서 소모적인 주도권 다툼을 벌여왔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분절 구조가 수출 창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원전 산업은 한수원이 발전소 건설과 운영을 맡고, 설계는 한국전력기술, 기계 정비는 한전KPS, 연료 제조는 한전원자력연료 등으로 파편화돼 있다.
이러한 모래알 구조 속에서 각 기관은 한수원이 발주하는 '용역'을 수행하는 철저한 수동적 관계로 전락했다. 자기 회사의 단기적인 용역 계약 이행에만 매달릴 뿐 차세대 독자기술 개발을 위한 유기적인 시너지는 기대하기 어렵다. 사공이 많은 것이 아니라 아예 각자 다른 배를 타고 있는 격이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핵심 두뇌들의 '탈(脫)원전' 러시다. 전력을 팔아 직접 수익을 창출하는 한수원과 달리 다른 공기업들은 당장 수주 물량이나 용역이 끊기면 인력을 유지할 기초 체력이 부족하다. 일감이 줄어드는 보릿고개가 올 때마다 한전기술 등에서 힘겹게 키워낸 고급 인력들이 해외나 타 업계로 빠져나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글로벌 원전 시장은 총성 없는 전쟁터와 같다. 미국, 프랑스 등 원전 강국들은 국가적 역량을 하나로 결집해 수주전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 역시 설계부터 운영, 연료 수급까지 하나의 통합 컨트롤타워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만 이들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다. 이는 K-원전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근본적인 덩치 키우기이자 체질 개선 전략이다.
원전 업계 현장의 요구는 명확하다. 자금력과 방어력을 갖춘 한수원 등을 중심으로 일원화해 일감이 부족한 시기에도 고급 인력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는 튼튼한 방어막을 쳐야 한다는 것이다. 한전과 한수원은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모래알 같은 원전 생태계를 어떻게 단단한 바위로 뭉쳐낼지 뼈를 깎는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