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은 산업가속화법(IAA)을 통해 불공정한 글로벌 경쟁과 역외 공급망 의존 확대에 대응해 유럽 산업 기반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U는 최근 IAA를 공개하며 전략 산업 제품의 역내 생산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이같이 소개했다. 글로벌 공급망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메이드 인 유럽(Made in Europe)’ 전략을 바탕으로 자국 산업 기반을 지키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전기차와 배터리, 철강, 알루미늄 등 산업계를 아우르는 핵심 산업들이 그 대상이다. 미국에 이어 EU까지 각국이 강한 무역장벽을 세우는 모습이다.
글로벌 국가들이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서는 사이 국내 전기차 시장은 ‘외화내빈(外華內貧)’에 가깝다. 지난달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한 브랜드는 기아였다. 기아는 1만4488대를 판매하며 월간 기준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같은 기간 테슬라는 7868대를 판매하며 수입차 브랜드 가운데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시장 내부를 들여다보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수입차와 국산차 사이에서 가격 경쟁이 격화되며 사실상 ‘치킨게임’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모델3와 모델Y 가격을 트림별로 최대 940만원 인하했고, 기아 역시 EV5 롱레인지와 EV6 가격을 각각 280만원, 300만원 낮췄다. 최근 만난 국내 자동차업계 관계자가 “판매량만 보면 시장은 커지고 국산차도 선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며 “국내 전기차 시장은 위태롭다”고 평가한 이유다.
보조금 정책도 큰 문제다. 전기차 보조금 제도는 배터리 성능 등을 기준으로 국산차에 유리하도록 설계됐다고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외국산 전기차에도 상당 부분이 돌아가는 구조다. 현대차 아이오닉6는 국고보조금과 전환지원금까지 최대 670만원을 받을 수 있고, 테슬라 모델3 역시 같은 기준으로 최대 520만원의 지원을 받는다.
주요국들과는 달리 한국 시장은 안방을 스스로 내주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기업들이 소비자 선택을 받을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산업 기반을 지키기 위한 정책적 장치는 필수적이다. 업계에서 늦어지고 있는 한국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불리는 ‘국내생산촉진세제도’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기차 시대 산업 경쟁이 국가 간 경쟁으로 확대되는 지금, 더 늦기 전에 산업 방어선부터 세워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