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연결 공시 책임·수용성 고려해 단계적 도입해야"
민간 "글로벌 시장 생존 위해 법제화는 필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법제화를 둘러싸고 재계와 민간의 시각차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5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지속가능성 공시 입법화와 정책 동향 토론회’에서는 최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관련 법안을 두고 기업 부담을 우려하는 재계와 조속한 의무화를 요구하는 민간의 입장이 맞섰다.
재계는 우선 법정공시 도입이 자칫 기업들에게 비용 부담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조영준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장은 ESG 공시가 기업 가치 제고가 아닌 단순 규제 비용으로 남지 않도록 시행 가능한 역량을 갖춘 기업부터 먼저 시작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조 원장은 "자국 기업의 수용성을 고려해 대규모 자산 기업부터 순차적으로 공시를 의무화한 일본식 모델을 언급하며 국내에서도 기업별 준비 상태를 충분히 고려한 유연한 제도 설계가 선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결 기준 공시에 따른 법적 리스크도 핵심 쟁점으로 부각됐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ESG 공시는 연결 기준으로 수행돼야 하는데 지배회사가 종속회사에 비재무 데이터를 강제할 법적 권한이 현재로선 미비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수십 개의 종속사 데이터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에 대해 최종 공시 주체인 모회사가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는 불합리하다고도 지적했다. 김 본부장은 "비재무 사항에 대한 이사회 승인 범위와 대표이사 기재 책임 등 거버넌스 전반에 대한 법적 기준 확립이 선행돼야 기업들이 시스템 구축에 나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민간에서는 재계의 신중론이 글로벌 시장 도태로 이어질 수 있다며 법제화의 속도를 높여 조기에 의무화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기업들이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공개해온 경험이 충분한 만큼 더 이상의 도입 지연은 명분이 없다는 주장이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총장은 "현재 논의되는 기준들은 시장의 실효성을 담보하기에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다"며 "일본과 싱가포르 등 주요국 사례를 참고하더라도 보다 전향적인 의무화 대상 확대와 조속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총장은 글로벌 시장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선 공시 의무화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며 스코프3(공급망 배출량) 공시 등에 대한 명확한 의무화 일정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데이터 신뢰성이 법제화의 성패를 가를 것이란 제언도 나왔다. 권성식 한국표준협회 ESG경영센터장은 "이미 산출된 ESG데이터만 확인하는 현재의 사후 검증 방식으로는 정보 품질을 근본적으로 담보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권 센터장은 "어떤 정보를 외부에 알릴지 결정하는 핵심 항목 선정 단계부터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인증 체계가 법제화 과정에 포함돼야 공시 내용의 부실을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쟁점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정부는 기업 수용성과 국제적 기준 사이의 균형점을 찾겠다는 원칙론적 입장을 유지했다. 장지원 금융위원회 사무관은 "국제적 정합성과 기업 수용 가능성, 정보 유용성이라는 3대 원칙을 기반으로 제도를 설계하고 있다"며 "재계에서 우려하는 스코프3 유예 기간 등 핵심 현안을 실무 워킹그룹에서 세밀하게 검토 중이며 공시가 기업에 단순 규제가 아닌 실질적 지원이 될 수 있는 대책을 4월까지 내놓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