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3월 개정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시행을 앞두고 고용노동부가 원청 사용자와 하청 노동조합 간 교섭절차를 구체화한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현행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큰 틀을 유지하되, 교섭주체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노동위원회(노동위)가 교섭단위를 분리하는 방향이다. 다만, 개정 노조법의 핵심인 사용자성(실질적 지배력) 확대의 판단기준이 여전히 모호해 현장 혼란은 한동안 지속할 전망이다.
◇누가 원청과 협상할 수 있나
노조법 개정안이 시행된다고 모든 하청 노조가 원청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원청 사용자의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돼야 한다. 원청의 교섭요구 사실공고 또는 교섭요구 노동조합 확정공고의 대상이 된 하청 노조는 자동으로 원청 사용자와 교섭 대상이 되지만, 여기에서 제외된 하청 노조는 노동위 ‘사용자성 판단 지원위원회’로부터 해당 하청 노조에 대한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돼야 교섭권이 생긴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2차 이하 하청 노조는 최종 원청과 교섭이 불가하다. 기본적으로 3차 하청의 원청은 2차 하청 사용자, 2차 하청의 원청은 1차 하청 사용자로 판단된다. 단계를 건너뛴 원·하청 간에는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부도 최종 원청이 2차 이하 하청 노조의 사용자로 인정되는 사례는 없거나 극단적으로 적을 것으로 본다.
◇ “자율 합의 우선, 안 되면 분리”
사용자성 인정을 전제로 원청 사용자에 대해 원·하청 노조의 교섭창구는 노·사 간 합의에 따른다. 모든 노조가 공동교섭을 할 수도, 각 노조가 자율적으로 개별교섭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합의는 원청 사용자와 모든 노조의 의견 일치를 의미한다. 합의가 무산되면 노동위에 의한 교섭단위 분리 절차가 진행된다. 교섭창구 단일화에서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는 원칙적으로 분리된다. 원·하청 노조 간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청 노조에 대해선 노동위가 일종의 ‘교통정리’를 한다. 직무나 이해관계, 노조의 특성에 따라 유사 하청별로 교섭단위를 묶어 기업의 교섭 부담을 줄이면서도 하청 노조의 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함이다.
◇개정 법 효과 보려면 ‘원청 노조’ 양보 필수
‘하청 노조 교섭권 강화’라는 개정 노조법이 효과를 보려면 일정 부분 원청 노조의 양보가 필요하다. 교섭창구가 분리된 상태에서 원청 노조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선(先) 교섭을 진행하면, 원청 노조의 교섭 결과가 하청 노조의 교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정부는 노조 간 관계에 정부가 개입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조 간 관계는 제도적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며 “원청 노조가 먼저 하청과 함께 교섭하겠다고 이야기하고, 그걸 사용자가 동의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면 그건 지금도 가능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 미조직 하청 ‘조직화’ 속도 내나
개정 노조법이 시행되면 양대 노동조합총연맹(노총)의 영향력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원청 노조가 한국노총, 전국민주노총의 가맹 노조의 산하 노조라면 하청 노조도 같은 총연합단체에 소속되는 게 교섭에 유리해서다. 미조직 하청도 원청과 교섭하려면 노조라는 실체가 필요한데, 신생 노조가 교섭력을 높이려면 양대 노총의 개입과 지원이 필요하다. 다만, 양대 노총 중심의 교섭 문화가 고착화하면 상대적으로 미가맹 노조의 교섭력이 약해질 소지도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제도에 의지해서 이 문제를 풀려면 여러 측면에서 어려운 점이 나올 수 있다”며 “서로 간 끊임없이 협의하고, 대화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그렇게 윈-윈 할 수 있도록 원·하청 노조, 원·하청 노·사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자성 판단기준 여전히 불명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에도 개정 노조법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가장 큰 쟁점인 사용자성 판단기준이 모호해서다. 구체적인 기준은 내달 지침에서 사례별로 제시될 예정인데, 기업별 계약관계가 천차만별이라 판례에 근거한 지침으로는 모든 논란이 정리되기 어렵다.
특히 사용자성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지침’으로 불리는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 지침’을 발표했을 때, 많은 기업이 지침에 근거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는데, 이것이 노조의 줄소송으로 이어졌다. 발표될 지침에서 사용자성 인정범위가 노동계의 기대보다 협소하게 제시되고, 이것이 사용자성 판단 지원위원회 판단에 반영된다면 임금피크제 소송과 같은 소모적 법적 다툼이 반복될 소지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