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태계, 첨단 쏠림 속 '붕괴의 경고등'[공존의 붕괴, 양극화 시대②]

입력 2025-10-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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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는 더 이상 경제의 언어가 아니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삶의 간극이 벌어지며 불평등은 제도의 균열로 번지고 있다.
정치의 언어는 타협이 아닌 대립으로, 경제의 온도는 계층에 따라 극단으로 갈라졌다. 부와 일자리, 교육과 기회가 양극단으로 치닫자 중산층은 붕괴되고 청년 세대는 계층 이동의 희망을 잃었다. 공존의 균형은 무너진 지 오래다. 이념보다 감정이 정치의 기준이 되고 사회는 협력 대신 불신으로 굳어갔다.
최근 방한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 안에서도 최소한의 공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한국의 부의 집중이 민주주의 지속 가능성을 흔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양극화는 이제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의 문제다. 성장과 신뢰, 민주주의의 토대를 동시에 흔드는 시대의 균열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본지는 그 균열의 원인을 진단하고 다시 공존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반도체·AI 쏠림, 전통산업 외면
정부 투자도 신산업에 집중
기간산업 붕괴 땐 생태계 전체 흔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서울 마포구 프론트원에서 열린 국민성장펀드 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 생태계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첨단 산업만 성장 가도를 달리는 반면, 철강·석유화학 등 전통 산업은 침체의 늪에 빠지면서 산업 간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지원까지 첨단 산업에 쏠리면서 불균형이 더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제조업 전반에서 산업군 간 실적 격차가 뚜렷해지고 있다. AI, 빅데이터, 전기차 등 신산업 중심으로 글로벌 수요가 몰리면서 첨단 부품 산업의 실적은 급등했지만, 전통 제조업·기초 소재 산업은 디지털 전환이 더딘 탓에 수요 감소와 실적 둔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의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한 166억 달러를 기록했다. 8월(151억 달러)에 이어 두 달 연속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등 고부가 메모리 공급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다.

자동차 역시 호조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자동차 수출액은 64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증가했다. 이는 9월 수출 가운데 최대 실적이다. 전기차(EV)·하이브리드차와 함께 중고차 수출도 늘며 4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반면 철강은 부진이 지속됐다. 지난달 철강 수출액은 전년보다 4% 감소한 26억 달러로, 5개월 연속 내림세를 보였다. 석유 관련 품목도 비슷하다. 석유제품은 41억5000만 달러로 3.7% 늘며 잠시 회복세를 보였지만, 국제 유가 반등에 따른 일시적 효과에 불과했다. 석유화학은 오히려 37억1000만 달러로 2.8% 줄었다.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서울 강남구 퓨리오사AI를 찾아 백준호 대표와 회사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서울 강남구 퓨리오사AI를 찾아 백준호 대표와 회사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

이처럼 산업별 실적 격차가 커지면서 정부의 정책·재정 지원도 자연스럽게 효자 산업에만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재명 정부는 올해 들어 AI와 반도체 육성에 정책 역량을 쏟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신성장 동력 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분야별로는 AI가 30조 원으로 가장 많고, 반도체 20조9000억 원, 모빌리티 15조4000억 원, 바이오·백신 11조6000억 원 등 4개 부문에 전체 투자액의 절반 이상이 배정됐다. 반면 철강·석유 등 전통 산업을 위한 투자는 전무했다.

물론 정부가 전통 산업에 무관심한 것만은 아니다. 정부는 8월 ‘석유화학 구조조정안’을 발표하면서 연말까지 자체적으로 에틸렌 생산량 감축 방안을 마련한 기업들에 금융·세제 등 지원하기로 했다. 다만 정작 각사의 이익과 지분 등 복잡한 이해관계로 자구계획안 수립에 난항을 겪으면서 정책 자체의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철강 산업을 국가경제 및 안보의 핵심 기반 산업으로 규정하고, 장기적으로 지원하는 ‘K-스틸법’ 역시 애초 8월 임시국회에서 다뤄질 예정이었지만 여야 간 갈등으로 처리가 늦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극화 심화와 투자 편중이 결국 산업 생태계 전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의 관심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전기차 등 첨단 전략산업에 집중돼왔다”며 “반면 철강·화학 등 전통 기간산업은 상대적으로 정책 지원이 부족하고, R&D 자금 역시 첨단 분야에 편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간산업은 단순히 대기업뿐 아니라 전후방 생태계 전체와 연결돼 있어 한 번 무너지면 피해가 크다”며 “밑단의 수많은 가공업체까지 아우르는 생태계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국가 산업 구조의 근간”이라며 “이들을 소홀히 하면 중국 등 경쟁국에 기술 주도권을 빼앗겨 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소기업과 소외 섹터를 보호·지원하는 균형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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