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정책펀드·BDC 도입으로 자금 물꼬
선택과 집중·민간 주도 체계가 성과 열쇠

정부가 금융권의 자금 흐름을 부동산·가계대출에서 혁신기업으로 돌리는 ‘생산적 금융’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단순히 돈을 풀어주는 것을 넘어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내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업계에서는 생산적 금융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주요 핵심 사업에 집중하고 민간 주도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한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최근 금융지주 회장들을 만나 “금융이 첨단산업, 벤처·혁신기업, 지역경제, 재생에너지 등 생산성이 높은 영역으로 자금을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은행장 간담회에서 “건전성 규제를 개선하고 모험자본 공급을 적극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생산적 금융은 가계·부동산 중심의 자금 배분 관행을 벗어나 벤처·첨단산업, ESG·재생에너지 등 실제 생산 분야에 투자하는 흐름을 말한다.
정부는 3월 첨단전략산업기금(50조 원)을 출범시키고 반도체, 2차전지, 바이오, AI 등 핵심 분야 기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연말에는 국민·민간·연기금 자금을 합쳐 150조 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도 조성할 계획이다.
벤처투자 확대를 위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도 도입된다. 상장 투자상품 형태로 운영돼 일반 투자자도 참여할 수 있으며, 자산의 절반 이상을 벤처·혁신기업에 투자해야 한다.
또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는 발행어음·IMA로 조달한 자금의 25%를 의무적으로 모험자본에 투자하도록 자본시장법이 개정됐다. 이 같은 제도 변화는 증권사를 통한 모험자본 공급을 크게 늘릴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의 기조에 발맞춰 과학기술인공제회, 군인공제회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도 벤처캐피털(VC) 출자를 확대하고 있다. 모태펀드 예산 역시 올해 9896억 원에서 내년 2조 원으로 두 배 이상 증액될 예정이다. 이재명 정부는 2030년까지 연간 벤처투자 40조 원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다만 현장에서는 이러한 대규모 자금 지원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한 핵심 분야 육성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VC 대표는 "과거 정책펀드들이 '뿌리기식' 지원으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던 전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며 "실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선별하고, 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기업 중심의 실행체계 구축도 핵심 과제로 꼽힌다.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되, 실제 투자 결정과 운용은 시장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성과 관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단순히 자금을 투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투자 이후 기업들의 성장 과정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추가 지원을 제공하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금 지원뿐 아니라 규제 개선, 인력 양성, 해외 진출 지원 등 종합적인 생태계 조성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자금도 중요하지만, 혁신 기술을 실제 사업화할 수 있는 규제 환경과 전문 인력이 뒷받침되어야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