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박한 일정에 B-1 선호 현상
“미리 일정 예측하고 준비해야”

미국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이 구금된 사건을 계기로 기업들의 해외 파견 비자 운영 실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제가 된 단기 상용 비자(B-1)는 다른 장기·기술 파견 비자보다 절차가 간단하고 발급 속도가 빨라 치밀한 일정과 촉박한 현장 상황 속에서 기업들이 선호해온 방식이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전용 비자가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하며, 기업 역시 정부와 긴밀히 소통하며 내부 관리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미국 정부의 투자 압박이 거세지면서 국내 기업들의 현지 공장 건설이 가속화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으며,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배터리 업체들도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인력 파견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돼 정부 차원의 신속한 비자 제도 정비가 요구된다.
L-1(주재원 비자)은 관리직·전문직·특수 직군을 대상으로 발급되는 비교적 안정적인 비자다. 실제로 삼성전자 오스틴 반도체 공장에서는 30일 이상 출장자에게 L-1 비자 발급을 지침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신청 요건이 까다롭고 취득 절차가 복잡해 단기간에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기업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LG에너지솔루션 협력사 A사도 마찬가지다. 공장 라인과 설비를 점검하는 업무 특성상 일정 예측이 불가능해 고객사 요청에 따라 즉각 출국해야 한다. A사 한 직원은 “공사 현장에 따라 갑자기 출국해 파견 근무를 하고 며칠 뒤 다른 나라로 이동하기도 한다”며 “일반 비자를 신청하면 수개월이 걸리는데 이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면서 수많은 협력사 인력이 단기간에 투입돼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다. 하지만 정식 비자 절차는 심사만 수개월이 소요돼 대응이 사실상 어렵다. 이경희 법무법인 에스엔 미국 변호사는 “전문직 비자를 받으면 리스크는 줄일 수 있지만 준비 과정이 길고 대사관 인터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는 기업만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렵다. 현장의 긴급성과 제도의 경직성이 맞물린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식 업무 과정에서 직원 개인의 신변 안전이 걸린 문제이므로 절차를 더 촘촘히 갖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기업 간 소통 부족도 지적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은 투자와 인력 파견 과정에서 직면하는 애로사항을 꾸준히 제기하고, 정부는 새로운 비자 제도 신설이나 과거 쿼터제 부활 등 구조적 개선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적 대응 방안으로는 ‘사전 확인 절차’가 거론된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이 파견 전 미국 대사관을 통해 체류 자격을 반드시 확인하고, 나아가 국토안보부와 협의해 신분을 보장받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경희 변호사는 “장기 계획이 가능하다면 내년 파견 인원 규모를 미리 확정해 해당 업무에 맞는 비자를 준비하는 방식도 있다”며 기업의 선제적 대응을 주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