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1일 관세 부과를 하루 앞두고 한·미 무역협상이 전격 타결됐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첫 통상 시험대로 주목받았던 이번 관세 협상에서, 한국은 일본·유럽연합(EU)과 같은 수준인 15% 관세 인하를 이끌어내며 비교적 선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미국 측이 강하게 요구했던 쌀·쇠고기 등 농축산물 추가 개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경제 불확실성이 한층 해소된 가운데, 이 대통령의 '국익 중심 실용외교'가 첫 외교무대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31일 대통령실과 정부에 따르면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을 필두로 한 협상팀은 3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관세협상을 타결했다.
우리 정부는 3500억 달러의 대미투자와 1000억 달러의 에너지 구매를 조건으로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10%포인트(p)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는 일본·유럽연합(EU)과 동일한 세율로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관세 협상의 기본 원칙으로 삼겠다고 공언해왔다. 이번 협상은 그 원칙이 실제 외교 무대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준 첫 시험대로, 정권 인수위 없이 출범한 새 정부가 불완전한 내각 구성 속에서도 전 부처와 경제계가 '원팀'으로 협상에 나서며 단기간에 성과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이에 이 대통령은 협상 타결 직후 페이스북에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협상은 우리 국민주권 정부의 첫 통상 분야 과제였다"라며 "큰 고비 하나를 넘었다"고 말했다. 이어 " 촉박한 기간과 녹록지 않은 여건이었지만 정부는 오직 국익을 최우선으로 협상에 임했다"면서 실용외교의 방향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특히 이번 협상에서는 우리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의 관세를 15%로 낮췄다. 다만 정부는 당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이라는 점을 들어 12.5% 수준으로의 추가 인하를 요구했지만, 미국 측의 양보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일본·EU와 같은 수준이라는 점에서 형평은 맞췄지만, 더 낮은 수준의 관세를 기대했던 만큼 아쉬움도 남는다는 것이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하지만 농축산물 시장을 방어한 점은 긍정적이다. 김 실장은 "미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우리 농축산물 시장 개방에 대한 강한 요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식량 안보와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감안해 국내 쌀과 소고기 시장은 추가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김 실장은 "미국 요구는 다 아시는 대로 소고기를 30개월 월령 제한 두는 나라가 전 세계에서 3개 나라뿐이다고 주장했으나, 우리나라는 미국 소고기 수입 1위 국가라고 반박했다"며 "당연히 고성도 오갔을 것이고 우리 정부 내에서 협상 전략을 논의할 때도 고성도 오갔다"고 설명했다.
추가 시장 개방 없이 투자를 통해서만 일본·EU와 동일한 관세율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외교 성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미국이 품목별 관세 부과를 예고했던 반도체·의약품 등에 대해서도, 향후 협상에서 다른 주요국들과 비교해 불리하지 않은 '최혜국 대우'를 보장받은 점도 주목된다.
이번 성과의 배경에는 정교하게 설계된 맞춤형 투자 전략이 있었다. 한미 양국은 이번 협상서 총 3500억 달러(약 487조 원) 규모의 전략산업 투자 펀드 조성에 합의했는데, 핵심은 1500억 달러 규모의 '한미 조선업 협력펀드'다. 이 펀드는 단순한 선박 건조 지원을 넘어 MRO(유지·보수·정비), 조선기자재 등 조선 생태계 전반을 포괄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김 실장은 "세계 최고의 설계, 건조 경쟁력을 보유한 우리 조선 기업들과 소프트웨어 분야에 강점을 보유한 미국 기업들이 힘을 합한다면 자율 운행 선박 등 미래 선박 분야에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나머지 2000억 달러는 반도체, 원전, 이차전지, 바이오 등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에 대한 대미 투자 펀드로 조성된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우리 기업이 전략적 파트너로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크며,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