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D-10일] "정부 눈치 보느니…규제 적은 해외로 다시 가겠다"

입력 2022-01-17 05:00

서슬퍼런 칼날에 유턴 대신 엑소더스

법 저촉땐 대응 여력 없어
애매한 관련 규정도 문제
국내 공장 없애고 복귀 철회
'제조업 리쇼어링' 설자리 잃어

앞으로도 정부는 국내 복귀를 위해 투자하는 기업들에 아낌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낼 것입니다.

2019년 8월. 현대모비스의 울산 친환경 차 부품공장 기공식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은 “어려운 시기에 유망한 기업들의 국내 U턴은 우리 경제에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 생산설비의 국내 복귀를 격려하는 자리였다.

그는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체제가 흔들리고 정치적 목적의 무역보복이 일어나는 시기에 우리 경제는 우리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당시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문 대통령의 어조가 여느 때와 달리 낮고 강경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현대모비스는 진짜 국내 1호 U턴 대기업이었나

현대모비스의 국내 복귀는 2013년 12월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 이른바 U턴법 개정 이후 6년 만이었다. 대기업 가운데 처음이었다. 자동차 부품기업 5곳도 현대모비스를 따라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현대모비스는 정말로 정부의 기업 지원법에 따라 국내에 복귀한 1호 대기업이었을까. 결과만 따져보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2017년,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사태 이후 현대차그룹의 중국 사업은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한때 점유율 두 자릿수를 넘보며 연간 150만 대를 판매했던 중국이었다. 그러나 사드 사태 이후 중국시장은 미련없이 한국차를 버렸다.

부침을 겪었던 현대차는 베이징1공장(폐쇄)을, 기아는 옌청1공장(매각)을 정리했다. 자연스레 이곳에 부품을 납품하던 현대모비스 역시 일감이 줄었고, 현지 공장을 폐쇄했다.

문 대통령이 격려했던 현대모비스 울산 친환경차 부품공장은 이와 별개다. 현대차그룹이 중국 완성차 조립공장을 폐쇄하기 이전부터 계획했던 공장이다.

뜻하지 않게 중국공장의 폐쇄와 맞물리면서 떠밀리듯 ‘해외에서 철수해 국내로 복귀한 대기업 1호’가 된 셈이다.

◇위험공정 해외 재발주…서슬 퍼런 규제 탓

정부는 해외기업의 국내 복귀를 지원한다고 나섰다. 그러나 복귀는커녕 국내 기업도 갖가지 규제에 떠밀려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탈(脫)한국을 부추기는 대표적인 사례가 '중대재해처벌법'이다.

해외로 생산공장을 옮겨가는 곳은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대기업보다 중소ㆍ중견기업이 대부분이다.

한국지엠 부품 협력사 300여 곳이 모인 ‘협신회’ 소속 P사의 관계자는 “현재 경기도 안산에 있는 조립설비를 2023년께 베트남으로 옮겨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건비 부담을 감수하며 버텼지만 이제 재해처벌법까지 감수해야하는 탓이다.

이 관계자는 “자동차 회사는 한 가지 부품을 여러 회사에 분산해 발주한다. 같은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는 이미 해외에 발주해 납품 받거나, 국내 조립공장을 아예 해외로 옮긴 곳도 있다"라며 "비용도 비용이지만 대기업처럼 중대재해법에 대응할 여력이 없는데 법적책임까지 감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대응 여력이 있는 반면, 중소ㆍ중견기업의 경우 자칫 회사의 존폐가 결정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의 이탈이 더 빨라지고 있다.

한때 전북 군산에서 현대중공업 협력사로 공장을 돌렸던 D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 2019년부터 공정을 2곳으로 분리해 원재료 가공은 해외에서, 조립은 한국에서 추진 중이다.

프레스와 성형 가공이 필요한 부품은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에서 공급받고 한국에서는 단순 조립만 한다. 그나마 중대재해 처벌법이 본격화되면 이 조립 공정마저 해외로 옮겨야 할 상황이 됐다.

처벌을 피하기 위한 주먹구구식 매뉴얼마저 중소ㆍ중견기업들 사이에 나돈다.

현대차에 배기 관련 부품을 공급하는 Y사는 공정의 특성상 ‘가열과 가압’ 작업이 필수. 얇은 철판에 열을 가하고, 이를 프레스 기기로 눌러서 원하는 형상을 만든다. 2018년 겨울, 뜻하지 않게 근로자가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6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 2명 이상 발생할 경우라는 규정도 모호하다. 별도의 보상을 하더라도 이 기준을 비껴가기 위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결국, 부상을 당한 근로자와 이 부분을 합의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6개월로 정해진 요양 일수를 별도로 줄여 법망을 피해가겠다는 의도다.

◇기업의 국내 복귀 가로막는 규제 자체가 '탈(脫)한국' 부추겨

중대재해 처벌법을 피해 한국을 떠나는 기업이 얼마나 되는지, 또 이로 인해 얼마나 많은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게 되는지 알 길이 없다. 법시행 이전이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의 산업정책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제조업 리쇼어링’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일각에서는 본격적인 탈(脫)한국이 이미 시작했다는 견해도 나온다. 반드시 국내에 있던 공장을 없애고 해외로 설비를 이전하는 것만이 ‘탈한국’은 아니다.

추진 중인 공장을 국내가 아닌 해외에만 세우는 것, 국내 U턴을 염두에 두었다가 서슬 퍼런 ‘중대재해처벌법’에 가로막혀 복귀를 철회하는 것 역시 탈한국과 일맥 한다.

소비시장과 저임금 인력을 찾아 해외로 나갔던 기업이 다시 국내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것 자체가 '코리아 엑소더스(한국 대탈출)'라는 의미다.

특히나 애매한 관련 규정도 이들의 국내 복귀를 가로막고 있다.

그나마 규모를 갖춘 중소ㆍ중견기업은 일부 연합회를 꾸리고, 관련법에 대한 법률자문단을 꾸리는 동시에 로펌의 도움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법령 자체가 모호해 얼마나 효율성을 일궈낼지는 의문이다.

전승태 경총 산업안전팀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기업이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 경영 책임자의 개념과 책임의 범위다. 경영책임자를 따로 선임한 때도 대표가 처벌 대상이 되는지. 정부에서 하위법령을 마련하고 해설서까지 배포했는데도 분명하지 않다”라며 “법에선 그냥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라고만 돼 있다"라며 모순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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